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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2023년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불공정 거래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공정위가 실태조사 결과를 밝히면서 "대금 미지급, 지급기일 미준수 등 대금 관련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자진 시정을 유도하고, 응하지 않으면 직권조사 등을 통해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를 전적으로 공감하기엔 현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일거리 하도급을 두고 지배와 복종관계가 여전한 탓이다. 양측이 동등한 지위에서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도급법을 시행한다고는 하지만 그 취지와 달리 곳곳에서 탈법이 자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경기침체가 심각했던 지난해만 해도 하도급 대금을 현금 대신 어음 등 대체결제수단으로 지급한 비율이 높아졌다. 특히 원사업자에게 납품 대금을 조정해달라고 신청한 하도급 사업자가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난 반면, 하도급 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한 원사업자의 비율은 2배 이상 증가했다. 또 원사업자가 하도급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했다는 응답 비율은 전년 86.4%에서 77.3%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 외 어음대체결제수단은 11.8%, 어음 9.7% 등 순으로 조사됐다. 원가율 상승 등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현금지급 여건이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도급법 시행 불구 원하청간 동등한 지위 아닌 곳곳서 탈법 자행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 대부분의 원사업자(95.5%)가 법정 지급기일인 60일 안에 대금을 지급했지만, 지급기한을 넘긴 경우 지연 이자 등을 전부 받았다고 답한 하도급 사업자는 41.6%에 머물렀다. 게다가 조사 대상인 하도급 사업자 9만 곳 가운데 원사업자에게 납품 대금 조정 협의를 신청할 수 있는 '하도급 대금 조정 제도'를 활용한 비율은 8.6%에 그쳤다. 하도급 대금 조정 제도는 계약 기간에 공급 원가 변동 등으로 하도급 대금 조정이 불가피할 때 수급사업자 또는 협동조합이 원사업자에게 대금 조정 협의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인데도 '공급원가 상승 폭이 크지 않아서(17.0%)' '다음 계약에 반영하기로 합의해서(9.9%)' '원사업자가 수용할 것 같지 않아서(8.4%)' 등의 이유로 인상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하청기업들은 원청기업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조차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원청기업자에게 대들다가 언제 보복을 당할지 모르기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기업들 사이에 하도급법 위반이 극심한데도 근절되지 않는 건 피해기업이 대부분 불문에 부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원청기업들이 과징금·시정명령을 받으면서도 법을 비웃고 위반을 지속한 것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영향도 크다. 이번 기회에 하도급 갑질이 설 자리가 없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현금 결제 등 거래질서 개선·동반성장 문화 확산 돼야 윈윈 가능
 또한 하도급거래에 있어 기술자료 요구·제공 행위가 증가한 것으로 드러난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기술자료란 비밀로 관리되는 제조·수리·시공·용역수행 방법에 관한 자료와 그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갖는 자료를 뜻한다. 우선 원사업자의 7.2%, 수급사업자의 2.9%가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원사업자는 전년(3.3%)보다 2.9%포인트, 수급사업자는 전년(2.2%)보다 0.7%P 상승한 수치인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원사업자의 37.7%가 '제품 하자 원인 규명'을 꼽았고 '공동기술 개발(17.8%)' '공동 특허개발(8.9%)' 순으로 응답했다. 수급사업자의 39.7%도 '제품 하자 원인 규명'을 꼽았고 '공동기술 개발(14.8%)' '사유 모름(6.6%)' '공동 특허개발(2.5%)' 순으로 답했다. 반면 기술자료를 구두로 요구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사업자의 7.6%에 그쳤다. 전년도(18.3%)에 비해 급감했다. 기술자료에 대한 원·수급사업자의 요구 비율이 증가한 만큼 지속적인 홍보·교육을 통해 기술유용행위를 예방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게다가 현금성 결제·서면계약·단가 인상 비율 등의 거래 질서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동반성장 문화도 보다 확산돼야 장기화 되고 있는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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