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이선달은 장 노인과 떨어져 장터 여기저기에 떨어져 좌판을 벌이고 있는 일행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마구령에 새로 온 노각수에 대해 말을 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정이 안 간다는 것이었다. 넘어올 때 고치령으로 넘어왔는데 털보를 만났다고 했다. 털보는 옛날의 호기롭던 기세는 다 어디로 가고 풀이 죽어 있더라고 했다. 털보의 힘으로는 노각수를 밀어내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말속에는 이선달의 실력으로도 노각수를 누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기 담겨 있었다.

 "너무들 걱정하지 마시오. 그자가 아무리 무섭다고 하나 우리 편으로 만들면 될 것이오."

 장꾼들은 이선달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선달은 이번에도 부석장을 보고 같이 마구령을 넘자고 했다. 장꾼들은 이선달의 말에 마음을 놓았다. 이선달이 같이 넘어가 준다면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이선달은 장터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좌판을 벌였다. 좌판에는 시골장에서는 감히 구경조차 하기 힘든 귀한 물건들이 있었다. 장을 보러 온 아낙들은 이선달의 좌판을 들여다보며 군침을 흘렸지만, 값을 물어보고는 모두 혀를 내두르고 자리를 떴다. 낯선 장꾼 하나가 기동의 좌판 앞에 와서 쭈그리고 앉더니 이것저것 물건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따. 사지 않을 거면 귀한 물건 망가뜨리지 말고 물러서시오."

 "젠장 괜히 시비를 걸고 그러시오. 장에 나온 물건 구경하기 마련이지."   

 장꾼은 손에 들었던 물건을 좌판 위에 탁 내려놓았다. 이선달이 내려놓은 물건을 얼른 집어 들었다. 물건을 집어 든 손안에 작은 종이쪽지가 함께 딸려 올라왔다. 이선달은 재빨리 물건을 주머니에 넣는 시늉을 하며 종이쪽만 넣고 물건은 도로 꺼내어 옷섶에 슬슬 문질렀다.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 이런 시골 장터에서는 이 장사도 못 해 먹겠네."

 이선달이 투덜거릴 때 또 다른 장꾼 하나가 기동의 좌판 앞에 꿇어앉았다. 이것저것 물건을 뒤적거리더니 물건들을 도로 좌판에 올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터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이선달은 장꾼이 내려놓은 물건 밑에서 역시 작은 쪽지 하나를 집어 올려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네 명의 장꾼이 이선달의 좌판 앞에 찾아왔다가는 물건도 사지 않고 떠나갔다. 이선달은 서둘러 장 보따리를 쌌다. 파장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러자 장꾼으로 가장한 언양 무사들이 하나둘 이선달의 가까이 모여들었다.

 "장사도 안 되는데 방문판매나 하러 가봅시다."

 여섯 명의 장꾼이 순흥장터를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이선달은 장터를 빠져나오면서 한창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각설이에게 다가가 동전 한 닢을 던져주고 눈을 찡긋했다. 각설이는 답례로 더욱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불러제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7. 안동
이선달과 언양 무사들은 각설이 타령에 어깨춤을 들썩이며 순흥장터를 빠져나왔다. 이선달은 곧장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부지런히 걸었다. 순흥에서 안동까지 거리가 백삼십 리였다. 부지런히 걸으면 자정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형씨들 모두 축지법은 쓰실 줄 아시겠지요?"

 "그걸 꼭 써야 하나?"

 "뭐 알아서들 하시지요. 수월하게 가시려면 아무래도 도술의 힘을 빌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선달과 언양 무사들이 순흥장터를 떠나 오리쯤 걸어왔을 때였다. 조그만 마을을 지나가는데 제법 살림이 넉넉해 보이는 초가집 울타리 밖에 누런 황소 두 마리가 말뚝에 매어져 있었다. 이선달은 서슴없이 황소에게 다가가 말뚝에 매어 놓은 고삐를 풀었다. 황소는 이선달이 고삐를 잡아끄는 대로 순순히 딸려왔다.

 "자 이제 도술을 슬슬 부려보겠습니다."

 이선달은 황소의 등에 훌렁 올라탔다. 그 몸놀림이 워낙 날렵해 제비가 물을 차고 오르는 듯했다. 등에 올라탄 뒤 고삐로 엉덩이를 툭툭 치니 황소가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 모양을 본 언양 무사 한 사람이 남아있는 황소에게 달려가 고삐를 풀었다.  

 "나도 한번 도술을 부려볼까."

 언양 무사가 황소 등에 훌쩍 뛰어올랐다. 역시 고삐를 치자 황소 두 마리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황소의 걸음은 제법 빨랐다. 남은 네 명의 무사들은 황소를 따라가느라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