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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아니 주인의 허락도 없이 소를 타고 가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도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요? 그 도술이 이런 것이었습니까. 순 도적놈이구먼."

 "부러우면 내 등 뒤에 올라타시구려."

 "됐소. 난 그냥 걸어가렵니다."

 일행이 오리쯤 걸어왔을 때 이선달이 황소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다른 황소를 타고 온 언양 무사도 황소 등에서 뛰어내렸다. 고삐를 양쪽 뿔에 칭칭 감아 단단히 묶었다. 황소를 제집 있는 쪽으로 돌려 세워놓고 손바닥으로 찰싹 소리가 나도록 엉덩이를 쳤다. 황소는 깜짝 놀라 걸어 온 길로 내 뛰기 시작했다.  황소가 뛰어간 길에 흙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황소 두 마리는 순식간에 자기 집으로 찾아갔다.

 "허허, 참 훌륭한 도술입니다."

 일행들이 부지런히 걸어 저녁 무렵에 도착한 마을이 북후였다.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제법 큼직한 주막집이 있었다. 주막에는 이미 다른 손님들이 제법 들어있었다.

 "어디서 오시는 손님들이시우?"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주모가 반갑게 맞았다.

 "우리는 풍기에서 인삼거래를 하는 장꾼들이오. 내일 안동장에 갈까 하오."

 "안동장은 내일이 아니고 모레입니다. 장날도 제대로 모르고 오시다니요?"

 "그걸 왜 모르겠소. 우리는 꼭 장날이 아니어도 집집마다 방문판매를 하는 장꾼이오."

 평상에 앉아 탁주 사발을 들이켜고 있던 사내 하나가 참견을 하고 나섰다.

 "거 무슨 물건인지 구경이나 한번 합시다."

 이선달은 매서운 눈초리로 사내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평범한 장꾼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여염집 아녀자들이 규방에서 사용하는 방물이오. 남자들이 보기에는 좀 그렇소."

 "허, 그렇다면 진기한 물건이 많을 것 같소. 규방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라면 박달나무로 깎은 양물 같은 것도 있겠습니다."

 사내는 비위가 상할 정도로 빈정대는 말투로 시비를 걸어왔다. 이선달은 일부러 언양 무사들의 솜씨나 구경할 요량으로 거칠게 말을 받았다.

 "있다마다요. 박달나무 좆으로 주뎅이를 틀어막기 전에 탁주나 부지런히 드시지요."

 "뭐라고! 햐. 이놈들 보게. 우리가 누군 줄 알고나 덤비는 것인감?"

 "알 필요가 뭐 있겠어. 허구헌날 문디 좆이나 빨고 다니는 놈들이구먼."

 "이런 썅!"

 사내가 평상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다짜고짜 이선달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이선달이 주먹을 살짝 피한 다음 일부러 언양 무사의 등 뒤로 돌아가 숨었다. 사내는 언양 무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내의 주먹이 언양 무사의 턱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언양 무사가 발을 움직여 몸을 살짝 피하자 사내의 몸이 넘어질 듯 앞으로 쏠렸다. 허우적거리는 사내의 등을 손바닥으로 살짝 밀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을 굴렀다.  

 평상에서 같이 탁주를 마시던 사내들이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어디서 온 놈들인지는 모르겠다만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

 그중에서 덩치가 제일 커 보이는 사내가 달려들어 언양 무사의 멱살과 허리춤을 동시에 잡았다. 이얏!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몸을 비트니 언양 무사의 몸이 바람개비처럼 공중으로 거꾸로 솟아올랐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다음에는 언양 무사의 몸이 바닥에 내동댕이 처질 차례였다. 

 그러나 내던져진 언양 무사의 몸은 공중제비를 돌더니 사뿐하게 바닥에 내려섰다. 손에는 어느 사이에 꺼냈는지 짧은 단도가 들려있었다. 공격이 무위로 끝난 걸 확인한 덩치는 다시 달려들려다가 멈칫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눈 앞을 가렸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상투를 잡았다. 있어야 할 자신의 상투 꼭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언양 무사는 덩치의 손에 잡혀 공중에 거꾸로 서 있는 순간에 품 안의 단도를 뽑아 상투를 베어 버린 것이었다.

 "모두 물렀거라. 웬 소란들이냐?"

 싸움 구경을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주막집 대문께로 쏠렸다. 검으로 무장한 군사 세 명이 대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안동부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함부로 나대다가는 명줄을 끊어 놓을 테니 그리 알아라. 거기 칼을 들고 서 있는 놈은 이리 나오너라."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언양 무사를 호명했다. 언양 무사는 이선달의 눈치를 살폈다. 명령만 내리면 군사 세 명쯤은 간단하게 처리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선달은 저항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언양 무사가 하는 수 없이 단도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누가 칼을 집어넣으라고 했느냐. 어서 꺼내놓지 못할까. 이놈들이 아주 흉악한 놈들이구나. 모두 오라를 지어서 안동부로 끌고 가자."

 군사들 두 명이 정말로 언양 무사를 묶을 요량으로 앞으로 나섰다. 그때 이선달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대장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이렇게 처리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양에서 내려왔소이다."

 한양이라는 말에 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사실이요?"

 "그렇다니까요. 우린 한대감의 특사로 내려온 사람들이오."

 "뭐요? 한대감이라니오?"

 "여기서 이렇게 떠들 일이 아니니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얘기합시다."

 "알겠소. 그런데 상투가 잘린 저놈들은 뭐요?"  "아마 동네 건달들인 듯합니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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