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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대장은 상투가 잘린 덩치 일행을 주막에서 모두 쫓아냈다. 이선달은 방으로 들어가 대장과 마주 앉았다. 대장은 이선달이 왕명을 받은 암행어사인가 물었다. 이선달은 왕명이 아니라 한 대감의 특별명령으로 움직이는 특사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은 장현군이며 계유년에 김종서 대감의 목을 친 장본이라고 소개했다.

 “바로 이 칼이지요."

 이선달은 봉물 짐 안에 들어있던 세장검을 꺼내었다. 칼의 손잡이와 칼집이 어피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칼이었다. 안동부의 대장은 칼을 보자 잔뜩 긴장했다. 계유년에 김종서 대감의 목을 벤 칼이라고 하는데 더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곳에는 무슨 임무로 오신 것입니까?"

 “이곳의 움직임을 면밀히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순흥부와 안동부에서 올리는 소식이 실제와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시었습니다."

 “왜 순흥과 안동을 찍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걸 몰라서 물으시는 것입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묻는 것은 이미 한 대감님의 동생이신 분이 안동에 내려와 계시지 않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대장은 자신들이 그 임무로 순흥 부사를 만나고 돌아가는 중이라 했다. 이선달은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그래 순흥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던가요?"

 “저는 그냥 연락책일 뿐입니다. 문서로 받아 전달하는 것이지요."

 “마침 잘 되었습니다. 여기서 묵은 다음 우리와 같이 안동부로 가도록 합시다. 서찰은 단단히 챙기셨겠지요?"

 “그럼요. 제가 품 안에 이렇게 단단히 챙겼습니다."

 대장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쳐 보였다. 품 안에 순흥부에서 안동으로 보내는 귀중한 서찰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이선달은 계유년에서 갑술년 을해년에 이르기까지 한양에서 일어난 일들을  신명나게 들려주었다. 자기에게 잘 보이면 한양으로 올라가 의금부에 들어가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떠벌리자 대장은 액면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우리 대장님 함자가 어떻게 됩니까? 제가 한 대감께 미리 잘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저는 이곳 안동 토박이인데 권혜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 제가 해야지요. 내일 안동부까지 길 안내를 잘 부탁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이선달과 권혜민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 이선달은 권혜민이 품 안에 품고 있는 문서를 탈취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권혜민은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더구나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고 잠이 드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선달은 포기하고 같이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반을 들고 같이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 안동부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부지런히 걸으면 정오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권혜민을 비롯한 안동부의 군사들이 앞장을 서고 그 뒤에 이선달과 언양 무사들이 따랐다. 한 시진쯤 걸으나 조그만 산길이 나타났다. 주막집을 떠나기 전에 이선달이 언양 무사들을 몰래 불러 지시를 내려놓았다. 산길에 들어서면 무조건 세 놈을 잡아 죽이자는 것이었다. 산꼭대기에 닿자 이선달이 앞에 가는 권혜민을 불러세웠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갑시다. 소피도 좀 보아야 하겠소."

 “그러지요."

 이선달이 먼저 길옆의 너럭바위에 앉았다. 너럭바위 앞쪽은 가파른 바위 절벽이었다. 언양 무사 두 명이 낭떠러지를 향해 바지춤을 내리고 소피를 보았다. 그러자 군사들 두 명도 따라서 옆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소피를 보는 것이었다. 다른 언양 무사 세 사람이 가까이 다가갔다. 같이 옆에서 소피를 보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언양 무사들은 바지춤을 내리는 대신에 한참 오줌 줄기를 날리고 있은 군사들을 절벽 아래로 떠밀었다. 권혜민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칼집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에 이미 이선달의 세장검이 명치를 파고들었다. 권혜민의 관자놀이에 굵직한 지렁이 같은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칼자루를 쥔 이선달의 손목이 갑자기 뒤틀리자 '윽' 하는 비명과 함께 입안에서 붉은 피가 울컥 솟아 나왔다.

 권혜민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선달은 언양 무사 한 사람을 절벽 아래로 내려보내 떨어진 무사 두 명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놓고 오라고 지시했다.

 쓰러진 권혜민의 품속을 뒤지자 예의 그 서찰이 나왔다.  이선달은 서찰을 펼쳐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작은 글씨로 정갈하게 쓰여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선달은 한문을 읽을 수 없었다.

 “여러분 중에 글을 아시는 분이 계시는가요?"

 “저 아래로 내려간 친구가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참, 아닙니다. 이건 바로 대군께로 보내야겠습니다."

 이선달은 피가 조금 묻은 서찰을 곱게 접어 품 안에 넣었다. 절벽 아래로 내려갔던 무사들이 올라오자 권혜민의 시체도 그대로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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