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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이선달과 언양 무사들은 정오가 되어 안동에 도착했다. 대군이 지시한 안동김씨 종갓집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주인은 대갓집 종손답게 점잖게 생긴 노인이었는데 이선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대군께서 보내신 분들이라고요? 대군께서는 무탈하시온지요?"

 "송구스럽습니다. 하루 한 시가 가시방석이지요." 

 "그렇겠지요. 그 고역을 모르고 사는 우리가 모두 죄인입니다. 상왕 전하께서도 영월로 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제가 이틀 전에 전하를 알현하고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불쌍하신 우리 전하. 언제 이 난국이 해소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대감님께서 힘을 많이 써주셔야 할 것입니다. 안동뿐 아니라 영남에서는 귀 문중의 힘이 제일 막강한데 손을 잡아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거사가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몸은 죽어서 백골이 된다 한들 선왕의 유지를 저버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거사는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너진 삼강오륜을 바로 세우고 조선왕조의 기틀을 반듯하게 세우게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대군이 안동의 문중에 기대를 하는 것은 고려왕조를 세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를 아는 정통의 기개 있는 문중이기 때문이었다. 부당한 일에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안이라 굳게 믿었다. 안동김씨 문중의 장손인 김 노인은 진즉부터 대군이 보내온 사발통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고 문중 사람들은 물론이고 안동의 유림들을 찾아다니며 인륜을 저버린 새 왕의 부당함을 성토하고 다녔다.

 그러나 감시의 눈길도 만만치 않았다. 한 대감의 육촌 동생인 한명청이 일찍부터 안동에 내려와 순흥부의 일을 세세히 살피고 있었다. 장손 김 노인도 그런 낌새를 알아채고 운신하는데 적잖이 조심하고 있었다. 순흥 부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섣불리 의중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김 노인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순흥부의 일이었다. 안동에서는 새 왕조의 세력이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는데 반해 순흥에서는 대군이 가끔 사람을 보내올 정도로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점이었다. 안동부에서 사람을 보내 순흥부를 염탐하고 있는 것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군이 사람을 안동까지 마음대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 노인은 자신의 그런 생각을 글로 적어 대군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사발통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이상 대군과 생사를 같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이미 대군께서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쪼록 주변을 한 번 더 살피시고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이곳 안동부는 우리와 뜻을 같이하기에는 너무 삼엄한 경계 속에 있습니다.-

 

 김 노인이 느끼기에 실제로 그랬다. 사발통문에 순흥 부사의 이름이 먼저 올라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 김 노인이었다. 수양대군의 의도대로라면 순흥 부사가 금성대군과 손을 잡는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대군이 움직일 수 없도록 꽁꽁 묶어놓고 있어야 할 사람이 순흥 부사였다.

 수양대군이 너무나 쉽게 자신의 대마를 내어주고 있는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그런 생각을 글로 적어 대군에게 보내기는 했지만 불안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순흥부의 일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던 김 노인은 찾아온 이선달에게 꼼꼼하게 근황을 캐물었다. 특히 새로 나타난 인물들에 대해 세세하게 물었다. 한명회의 인물들이 접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선달은 최근에 모여든 무사들의 근황을 김 노인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지금 자신과 같이 온 언양 무사들도 어제 새로 합류한 사실을 고했다. 그러자 김 노인은 놀란 눈으로 언양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언양 무사들이 한명회가 보낸 첩자들이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경계의 난감한 눈빛이었다.

 "큰일을 하는데 사람을 쓰지 않고는 불가합니다. 사람을 쓰는 일이야말로 일의 승패를 가르는 일이지요. 적의 사람일지라도 품고 갈 수 있는 넓은 아량이 있어야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아무쪼록 대군께 신중하게 움직이시라고 당부드리기 바랍니다."

 "대군께서는 이곳 안동을 제일 염두에 두고 계십니다. 거사하고 난 후 영남의 민심이 어린 주상전하께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를 염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대구와 함양은 순흥의 이보흠 부사께서 오래 머물러 선정을 베풀었던 곳이라 걱정이 없는데 오히려 가까운 이곳 안동을 더 염려하고 계십니다. 어르신께서 큰 힘을 보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문중의 힘이 얼마나 보탬이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하였으니 저들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이곳 안동 땅에도 낯선 자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부디 돌아가는 길에도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관에서 실종된 권혜민을 찾으러 나서기 전에 얼른 이곳을 뜨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선달은 안동김씨 문중 장손 김 노인의 집을 나와 안동장터로 갔다. 장터는 미어터질 듯했다. 순흥장 만큼이나 규모가 큰 데다 수박이며 참외 복숭아 따위 여름 과일들이 풍성하게 넘쳐났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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