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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이선달은 좌판을 벌이고 있는 장꾼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는 장꾼에게는 다가가 꼬치꼬치 캐물었다. 마침 미투리를 팔고 있는 장꾼의 모습이 거슬려 가까이 다가가 좌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건 누가 만든 물건입니까?"

 미투리 장사꾼이 이선달의 얼굴을 빤히 건너다보았다. 물건을 보고 고르면 그만이지 누가 만들었는지 물어서 뭐 하겠느냐는 표정이었다.

 "내가 만들었습니다만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마음에 안 들기는요. 마음에 드니까 묻는 것이 아니오. 어디 손 좀 한 번 만져봅시다. 미투리를 삼느라 손이 많이 상하셨지요?"

 이선달은 다짜고짜 손을 내밀어 미투리 장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손이 거칠기는 했는데 미투리를 삼느라 거칠어진 손이 아니었다. 미투리를 삼는 손이라면 엄지와 검지에 굳은살이 박혀있어야 했다. 그러나 거친 굳은살이 손바닥에 박혀있었다. 칼이나 창을 다루는 손이었다.

 "역시 미투리를 삼느라 손이 거칠군요."

 이선달은 짐짓 모르는 척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미투리 장수가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도대체 미투리를 살 거요 말 거요?"

 "아. 사야지요. 얼맙니까?"

 "삼십 전이오."

 이선달은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 미투리 값을 치렀다.

 "옜소. 좀 비싸긴 한데 물건이 좋아 삽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봅시다. 혹시 근자에 한명청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나라를 말아먹을 역적 놈이라고 하던데요."

 미투리 장수가 눈을 황소 눈알만큼 크게 뜨고 이선달을 쳐다보았다. 이선달은 대답도 듣지 않고 미투리 장수의 곁을 벗어났다. 표정으로 보나 말투로 보나 옳은 장꾼이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정말 자기 손으로 미투리를 삼는 사람이라면 장마다 돌아다닐 시간이 없을 것이다. 자기가 만든 물건을 장에 내다 파는 사람은 장꾼이 아니다. 이선달은 미투리 장수 말고도 몇 명의 의심 가는 장사치를 포착했다. 터무니없이 적은 물건을 벌여놓고 있거나 몸짓이 이상한 자는 십중팔구 장꾼으로 가장한 자들이다.

 이선달 일행이 장터를 벗어나려 할 무렵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장터 한쪽 구석의 공터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있었다. 이선달은 눈물이 울컥 솟아올랐다. 바로 남사당패였다. 방금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공중제비를 돈 다음 외줄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사람은 자신의 스승인 박상교였다.

 박상교는 줄 위에서 박수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추임새 동작을 했다. 그냥 공중으로 가볍게 솟아올라 줄을 밟은 발을 바꾸는 동작이었다. 구경꾼들의 박수 소리가 완전히 멈추자 박상교의 몸이 공중으로 새처럼 솟아올랐다. 물을 차고 공중으로 솟구치는 제비를 연상케 했다. 구경꾼들은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다가 박상교가 줄 위에 무사히 안착하는 것을 본 다음에야 우레 같은 손뼉을 쳤다. 박상교는 공중제비를 넘고 내려오는 순간에 구경꾼 속에 섞여 있는 이선달을 알아보았다. 지금까지 여러 아이를 키워 보았지만, 이선달 같은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외줄타기를 가르치려면 젖먹이 때부터 가르쳐야만 가능했다. 이선달처럼 열다섯이 넘어 줄타기를 배운 경우는 없었다.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은 예전에 삼척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북평장으로 옮겨 갈 때였다. 차림새가 꾀죄죄한 청년 하나가 헐레벌떡 남사당패를 따라잡았다.

 그때까지 이선달은 한 번도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한 시골뜨기였다. 세상과 동떨어진 미인폭포 옆의 암자에서 스님과 단둘이 십 년을 넘게 살았다.

 박상교는 그런 이선달을 남사당패에 받아주기로 했다. 줄타기를 가르쳤는데 몸의 균형을 잡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 년을 익히고 나니 더 가르칠 게 없을 정도였다. 박상교는 스승에게 매를 맞아가며 배운 것을 이선달은 한 마디 잔소리도 듣지 않고 완벽하게 소화해 내었다.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와 함길도를 오가던 남사당패는 한여름이면 토문강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남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생각대로라면 지금쯤 남사당패는 토문강에 있어야 했다. 이선달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남사당패를 만난 것이었다.

 줄에서 내려온 박상교가 곧장 이선달에게 다가왔다. 이선달은 박상교가 다가와 손을 잡기 전에 넙죽 땅바닥에 엎드렸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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