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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대군은 이선달이 탈취해온 문서를 받아보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문서는 순흥 부사 이보흠이 안동의 한명청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한명청은 한명회의 육촌 동생으로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한명회가 보낸 인물이었다. 문서에는 순흥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며칠 전에 마구령의 산적을 소탕하러 가서 한 놈을 사로잡아 온 내용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마지막 문구에 그쪽에서 보낸 자가 무사히 자리를 잡았다고 썼다. 대군은 마지막 문장에 무척 거슬렸다. 순흥 어디엔가 첩자를 심었다는 내용인데 순흥 부사 이보흠이 다른 흑심을 품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순흥부에 드나들며 이보흠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던 결과들이 모두 수포가 되고 만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틀 밤낮을 고민에 빠졌던 대군은 마침내 큰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꽁꽁 감추어 놓았던 단도를 품에 품었다. 해시가 넘어 순흥부를 찾은 대군은 그림자처럼 이보흠이 머물고 있는 관사로 들어갔다. 늦은 밤이었는데 이보흠은 순순히 대군을 관사 안으로 받아 주었다. 

 "대군께서 찾아오시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대군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일이 많이 앞으로 나갔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안동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북후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열한 명이나 되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합니다. 셋은 안동부의 군사들인데 여덟은 한명청의 졸개들인가 봅니다. 그쪽에서 생각하기로는 대군께서 보낸 자들의 짓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식을 누가 전해 옵니까?"

 "누구겠습니까? 한명청이지요. 어찌 되었든 소인은 관록을 먹고 있으니 한양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이곳의 일을 낱낱이 고해바친다면 내가 어떻게 운신할 수 있겠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저들이 나를 이 자리에 가만히 놓아두었겠습니까?"

 대군은 잠깐 동안 입을 다물었다. 이보흠을 순흥 부사로 보낸 것은 분명 새 임금인 수양이었다. 수양이 사람을 잘 못 보고 이곳으로 보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사님 진심을 말해 주시오. 내 목숨은 이 부사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진정으로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주시오."

 "내 마음은 진심입니다."

 "그렇다면 새로 온 저들의 첩자가 누구입니까?"

 "그건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군께서 모르고 지나가야 저들도 나에게서 나가는 정보를 신뢰할 테니까요. 저들의 첩자를 단번에 싹둑 잘라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대군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흠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너무 저들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아내어도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 같았다.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 주어야 저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알겠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가슴 졸이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 당상에서 소맷자락을 휘날릴 날이 올 것이오."

 직접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거사에 성공할 경우 영상대감이 되어 권세를 휘두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저 하나 잘되자고 이러겠습니까. 지금 지하에 계신 선왕께서 눈을 감지 못하고 계실 것입니다. 조선의 만백성이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내놓고 일을 도모한다면 하늘도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대군은 이보흠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 잠시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부사님밖에 없습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두 사람은 밤이 이슥도록 앞으로 해나갈 일들을 의논했다. 모든 일의 진행은 경상도 지리에 밝은 이보흠이 구상해내는 것이었다. 경상도는 태백산에서 줄기가 뻗어와 소백산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맥에 막혀 있었다.

 문경에서 넘어가는 조령과 풍기에서 넘어가는 죽령을 지키고 있으면 한양의 군대가 내려오는 것이 불가했다. 그리고 죽령의 동쪽에 있는 고치령과 마구령도 막아야 효과적으로 순흥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거리가 있는 조령을 지키기 위해 문경 군수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문경 군수를 설득하기 위해 내가 직접 나서보겠습니다. 꼭 성공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주시오."

 조령 다음에는 죽령이었다. 죽령에는 순흥부의 군사들과 전국에서 모여든 무사들을 보내기로 했다. 고치령과 마구령은 산적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미 마구령의 산적들은 이보흠의 손안에서 놀고 있었다.

 "거사를 하기 전에 영월에 계신 전하를 한 번 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고치령 너머까지 순흥부 관할이나 대군께서 주막거리까지 가시면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영월부에 서찰을 보내 전하를 영월 경계까지 모시고 오도록 해보겠습니다. 어차피 전하를 순흥으로 모시려면 그런 방법을 써야 할 테니까요."

 대군은 전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왕 만날 거면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거사는 대군과 이보흠의 머릿속에서 착착 진행되었다. 두 사람이 너무 자주 만나는 것도 눈에 띌까봐 아랫사람들을 보내 소식을 주고받았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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