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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해 2.5명(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는 붕괴 직전이다. 대형 병원도 필수 의료 분야는 대부분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지방 병원은 수억원대 고액 연봉을 내걸어도 의사를 영입하기 힘든 게 현주소다. 

 이러한 사정은 10여년 전부터 이미 예견돼 왔다. 정부는 그동안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다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 결과 의료 현장엔 미용·성형 분야 의사들은 차고 넘치지만 생과 사를 가르는 응급실에선 의사 기근에 허덕인다. 저출산 직격탄을 맞은 소아과·산부인과도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이 일상화되고 있는 배경이다. 무너진 필수·지역 의료 현장을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의료인력 확충 등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마련 지역의료 살리기
 정부가 의사인력 확충과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최근 공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개혁방안은 19년 만의 의대 증원 방침을 밝힌 지난해 10월 이후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살리기에 초점을 맞춰 정부가 마련한 후속 세부 방침이다. 지금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필수의료 위기의 악순환은 지속될 것이라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하지만 '국민이 신뢰하고 의료인은 자긍심을 가지는 필수의료'를 비전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긍정적이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시급한 의사 부족 해소 방안은 물론 붕괴 직전의 지역의료 살리기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대처 방안 등을 종합했다.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4가지 정책으로 분류된다. 지역필수의사제와 함께 '지역수가'를 도입하고, 현재의 전공의 36시간 연속근무를 축소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증이 아니면서도 비급여 이용이 많은 진료 행위에 급여를 섞어 사용하는 '혼합진료' 금지를 추진하는 것도 담겼다. 의료사고 형사처벌을 완화하고, 의사가 아니라도 미용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임상 수련을 마쳐야 개원 자격을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 등 의사 부족으로 붕괴에 직면한 필수의료 회생에 방점이 찍혔다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고난도 수술 등 필수의료 수가를 대폭 올려 주면서 산부인과와 소아과는 진료 외 당직 등 시간 수가도 받을 수 있게 한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여길 만하다. 

의사 증원 반대 의료단체 설득·보상 등 법적 보호 뒷받침 병행돼야
 특히 현실성 있는 지역의료 강화 방안에 눈길이 쏠린다. 장학금, 수련비 등 정부 지원을 받은 의사가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강제 지역 근무 논란을 빚어 온 '지역의사제'와 달리 자율 형식이어서 실효를 기대할 만하기 때문이다. 전공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고, 의료기관을 전문의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대책도 주목된다. 퇴직교수 등이 여러 의료기관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권역의사 인력뱅크도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아직 정교하게 다듬지 않은 내용도 있고, 논란을 부를 정책도 없지 않다. 의료인 사법리스크 부담은 줄일 필요가 있지만 세부안은 더 심도 있는 검토가 요구된다.

 가장 큰 문제는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는 일이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 풀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라는 데 있다. 필수·지역 의료계의 환경을 먼저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필수·지역 의료인력에 대한 보상과 법적 보호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의료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명이 걸린 시대적 과제다. 의료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선 의료계의 전향적 태도가 절실하다. 의사 증원을 반대하는 의료단체 설득 등 해결 과제도 적지 않지만 후속 조치가 속도감 있게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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