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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젊은 애들을 건너보낼까요?"

 "되었다니까 그러네."

 행수기생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신발을 꿰차고 휑하니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임영복은 약속대로 한 대감의 집으로 찾아갔다. 한 대감은 임영복의 절을 받고 먼저 안부를 물었다. 

 "그래 적적하지는 않았나? 내가 행수에게 특별히 부탁해놓기는 했는데 말이야."

 임영복은 품 안에 넣어가지고 온 보자기를 내놓았다. 예산 사는 한계원이 내놓은 물건이었다. 눈치 빠른 한 대감은 보자기를 풀어보지도 않고 정체를 가늠했다.

 "흐흐흐. 자네도 편하게 쉴 곳이 마땅찮구먼. 내 이럴 줄 짐작은 하고 있었네. 걱정하지 말게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네."

 "충청도 예산에서 올라 온 한계원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종친이라고 찾아온 모양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게. 말이 있어야 마차를 끄는 게 아니겠는가. 찾아보면 그런 자들도 써먹을 데가 있을 거야."

 임영복은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한 대감은 새로운 지시를 임영복에게 일러 주었다.

 "단단히 듣게 이번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일세. 이번 일이 끝나면 자네도 사대문 안에서 갓을 쓰고 한평생 지낼 것이야. 아무려면 자네를 한계원이 같은 자들과 비교할 수 있겠나. 엄연히 따지면 자네야말로 일등 정난공신일세."

 한 대감이 임영복에게 일러 준 명령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내일 당장 한양을 떠나 원산으로 가라는 것이었는데 목적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원산에 가서 사또를 찾아가면 새로운 명령을 전달받을 것이라 했다. 임영복은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한 대감댁을 물러 나왔다. 기생집에 돌아와 행수기생을 불러들여 대낮부터 정사를 벌였다.

 행수기생은 적극적이었다. 갖은 교태를 부리며 임영복의 비위를 맞추려 애썼다. 화대로 치면 이렇게 비싼 화대를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계원 오라버니 일은 흐으응. 아윽. 잘 되었나용? 으응."

 "걱정하지 말게. 안 그래도 마차를 준비했는데 말을 구하지 못하던 참이었다네."

 "아응. 오라버니 멋져잉. 아앙."

 아직 젊은 기생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을 시간에 임영복이 머무는 방에선 방아질 소리가 요란했다.

 그 시간에 한 대감은 궐에 들어 주상과 독대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환관과 시녀들도 모두 물리고 두 사람만 가까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래, 살수는 보냈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조선 최고의 살수를 보냈습니다. 계유년에 황보인 대감을 쳐 죽인 놈이지요."

 "그 자가 조선최고의 살수인가?"

 "그렇습니다. 그자의 주먹은 쇠망치와 같아서 능히 돌을 쳐부수어 버립니다. 칼과 창이 그의 몸을 해하지 못하니 감히 조선최고의 살수라 하는 것입니다."

 "한 대감. 오늘 나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세. 다시 한번 물어보겠네. 조선 최고의 살수가 누구인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임영복이…."

 "잠깐 그 임영복이란 자는 잠시 접어 두세."

 주상은 급하게 한 대감의 말을 끊었다.

 "조선 최고의 살수는 주먹을 휘두르고 칼을 휘두르는 자가 아닐세. 우리 오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고 하지 않았나. 조선 최고의 살수가 한 대감인가? 아니면 나인가?"

 "그야 당연히…. 소인입죠."

 "무슨 소리?"

 주상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대감 따위가 감히 어디라고 조선 최고의 살수 자리를 넘본단 말인가?"

 "성은이 망극합니다. 소인 말을 잘못했습니다."

 "그럼 다시 말해보게. 조선 최고 살수는 누구인가?"

 "그야 당연히 주상전하십니다."

 한 대감은 대답을 해놓고도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한여름인데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주상은 그런 한 대감을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주상이 왜 조선 최고의 살수인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리 악독한 살수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 조카를 죽인 살수는 없었지 않은가?"

 "성은이 망극합니다. 그 모든 것이 오로지 주상전하의 애국충정에서 우러나온 일이옵니다."

 "그렇지 않소. 애국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입에 발린 소리라는 걸 삼척동자도 알 것이오. 나는 오로지 조선의 왕이 되기 위해 사람을 죽였을 뿐이오. 이건 나만 그런 것도 아니오. 나의 방원 할아버지도 형제를 잡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셨소. 우리 이씨조선왕가의 핏속에는 악독한 살수의 피가 흐르는 것이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오. 앞으로 먼 후대에도 반드시 나와 같은 살수가 나올 것이오. 어쩌면 이 땅에는 이씨조선왕조가 망한 뒤에도 또 다른 살수가 나와 왕 노릇을 할 것이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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