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삽화. ⓒ장세련

 

 이선달은 윤미를 데리고 순흥의 배소로 돌아왔다. 윤미가 다소 적응이 안 되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 딴에는 순흥으로 간다니까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인사를 올려라. 이분이 바로 금성대군이시다. 큰절을 올리도록 해라."

 윤미는 이선달이 시키는 대로 대군에게 큰 절을 올렸다. 대군은 곱게 절을 하는 윤미를 내려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시녀 김련이 대군의 시중을 들었는데 불편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배소를 청소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부족함 없이 해내었는데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이 탈이었다. 노골적으로 대군의 잠자리까지 넘보았다.

 남녀 사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해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대군은 한사코 김련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일부러 이선달에게 부탁해 어린 소녀를 데려오게 한 것이었다. 예상한 대로 윤미를 본 김련의 뜨악한 표정은 절로 웃음이 나게 했다. 대군은 일부러 김련이 보는 앞에서 윤미의 손을 다정스럽게 잡았다.

 "네 나이가 얼마더냐?"

 "네 올해 열다섯입니다."

 "참 좋은 나이로구나. 련이는 이 아이를 잘 가르쳐 주거라. 이제 너희들은 그만 나가 보아라."

 김련과 윤미가 방을 나가자 대군이 이선달의 앞으로 바투 다가와 앉았다. 윤미를 데려오는 일보다는 새로 온 노각수를 처치하는 일을 제대로 해냈는지 궁금해서였다.

 "그자의 본명은 임영복이었습니다. 살수들이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마음이 바뀌었다는 뜻이지요." 

 대군은 이선달의 보고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살수는 무조건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살수가 자신의 의견을 넣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자가 마음을 바꾸었다는 확실한 증표라도 있느냐?"

 "그자는 자기 스스로 조선 제일의 살수라 했습니다. 계유년에 입궐하는 황보인 대감을 주먹으로 때려죽인 것도 본인이라 했습니다. 그 후에는 함길도의 이징옥 장군을 죽이는 일에도 일조를 했는가 봅니다."

 "이징옥장군을 죽인 건 부하들인 이행검과 정종이 아니더냐?"

 "그렇기는 한데 이자가 크게 관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음을 바꾸려는 이유가 무엇이라 하더냐?"

 "계유년에 공을 세운 자들은 너나없이 한 자리씩 꿰차고 앉았는데 이 자는 거기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나 봅니다. 지금도 하급 살수로 산적소굴에 보내진 데 불만이 많은가 봅니다."

 대군은 가만히 이선달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말하는 것이 자신의 의중을 내비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자를 이야기하기 전에 너는 어떠하냐? 우리 주상전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면 너는 어찌하겠느냐? 대궐을 차지하게 되면 병조판서 자리는 차지해야겠지?"

 이선달은 병조판서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그런 꿈을 꾸어 본 적이 있었던가 자문해 보았다.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상대방은 언제나 옳지 못한 일을 도모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대신에 자신이 출세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소인은 이번 일이 끝나면 산속에 들어가 조용히 살겠습니다."

 대군은 가만히 이선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일을 시키면서 흡족할 만한 보상을 해 준 적이 없었다. 이번 일이 성공하기만 하면 판서 자리를 내어 주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번 일이 잘되기만 하면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것이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 처리를 확실하게 하게. 임영복이란 자도 확실하게 잡아두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두대간으로 적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그만 건너가 보아라. 데려온 아이가 윤미라고 했느냐? 윤미는 오늘 밤 여기서 머물도록 해라."

   이선달은 배소에서 물러 나왔다. 윤미에게 주의를 단단히 주기는 했지만 걱정이 되었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