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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최옥연 수필가

 

나잇값은 비싸다. 나잇값을 하려면 먼저 입을 다물어야 하니 일단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입 닫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하겠지만 늘 말을 많이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고문일 수도 있다. 때문에 충분히 이해한다. 나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이놈의 입이 문제다 싶을 때가 있다. 입을 다무는 것은 침묵이다. 또한 침묵은 금이니 금만큼 비싼 것이 있겠는가, 고로 나잇값은 비싸다.

 나의 말에 역정을 우려를 곁들리거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치부할 사람들이 있으리라. 또는 나를 나무라는 사람도 분명 생길 것이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해당하는 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이를 먹으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 말은 자주 듣게 듣는다. 그래서인지 더 실감 난 나는 것 같다. 안 해도 될 말이나 하지 말아야 될 말들이 넘치고 있다. 도대체 입을 왜 닫으라고 했는지 한때는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또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입을 다물면 주머니도 같이 닫아야지 왜 주머니는 열라고 하나 하는 생각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입이 두 개 있다. 밥을 먹거나 말하는 입도 있지만 주머니도 입이다. 입 다물고 주머니는 열라는 말이 때론 오해는 불러오기도 한다.

 하물며 가진 것도 없는데 무슨 주머니를 열라고 하나 하겠지만 진짜로 주머니를 꼭 열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없는데 주머니는 안 열어도 된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서만 해도 괜찮다. 벌써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쉽게 이해되는 말인데도 행동에는 문제가 생긴다. 해서 부질없는 말은 아니 하는 것보다 못하다. 어른이라고 또는 너희 선배라고, 어쩌면 너무 사랑하고 아낀다는 이유이거나 그를 생각해서 도움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주저리주저리 말은 하지 않아도 안다. 특히 가족이라서 나이 많은 사람이 말은 모두가 옳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부모와 자식 사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격려이거나 조언이라고 하는 충고가 갈등의 요소가 되어 서로에게 벽을 만들 수 있다. 입 다물고 주머니 열지 않아도 된다. 그런 영양가 없는 말이 지겨우니 입 다물고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는 말은 듣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꼰대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 꼰대는 나이 많은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다소 젊은 층도 늘 각성하지 않으면 꼰대 대열에 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본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그 행위를 내 기준이나 내 가치관에서 상대에게 하게 된다. 심지어 스스로가 꼰대인지도 모르게 말이다. 젊은 당사자들은 꼰대는 거리가 멀다고 여긴다. 젊은 층의 꼰대 짓은 더 꼴불견이다. 때론 나이 많은 사람들을 폄하해서 다소 젊은 층에서 하는 고약한 발언이다. 왜 그렇게 영양가 없는 말을 해서 꼰대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궁금하다. 비싼 밥 먹고 왜 욕을 먹으며 살아야 될까.

 나이가 들었다고 또는 선배라고 반말은 밥 먹듯이 하고 함부로 단정 짓고 상대가 말할 기회를 빼앗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이가 적거나 나이가 많거나 남이 싫어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은 대화라도 오래 하면 싫어한다. 같은 말은 반복해서 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나 젊은 청춘이었던 소싯적 치기 어린 추억을 무용담처럼 끝없이 풀어내는 것은 더 좋지 않다. 싫어하는 사람 험담도 줄여야 한다. 기분 나쁘면 짧게 하고 끝내자.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말이 있다. 말없이 들어 준다고 끝도 없이 하는 것은 사양하자. 고견을 부탁하지 않으면 참자.

 돈 자랑 자식 자랑은 더 듣기 싫어한다. 아니 금기다. 돈 자랑하려면 돈을 써야 한다. 이러다 돌 맞을지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나도 그 꼰대 짓을 하려고 할 때가 더러 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채찍질하지 않으면 나도 그 꼰대 대열의 선두에 설까 봐 이실직고하고 있다. 매일매일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려고 한다. 어느 누가 나에게 이렇게 매 들고 쓴 소릴 해주겠는가,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 이것은 나의 각성제다. 상대와 말을 시작하다가도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책할 때가 종종 있다. 늘 경각심을 가지지 않으면 내가 싫어하는 나잇값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서 두렵다.

 반성하는 시간을 종종 가지려고 한다. 오늘은 행여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는지 점검한다. 아니면 또 꼰대 짓은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글은 스스로 다잡는 나의 다짐이다. 이쯤 살아보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바로 잡으려 애쓰고 있다. 

 음식을 먹을 때는 말을 더 조심할 일이다. 여러 사람이 같이 먹는 음식에 행여 침이나 튀면 낭패가 아닌가, 조심해야 한다. 얼마 전에 여러 사람과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비위가 심하게 약한 사람인지 밥상머리에서 침 튀기며 말을 많이 해도 밥 먹기가 불편하다. 가족이 먹던 밥도 잘 먹지 못한다. 하물며 남들이 같이 먹는 밥상에서 손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식욕이 돋지 않는다.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게 된다. 그런 분들의 행동이 나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입 닫고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면 열 주머니는 없고 말은 하고 싶어지니 낭패다. 그러면 입이라도 닫고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람 노릇 하면 살기는 갈수록 어려운 것 같다. 나이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기우제가 효과를 보는 것은 비가 올 때까지 지내기 때문이다. 결국 반복은 기적을 낳는 샘이다. 나도 기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끝없는 노력은 해야겠다. 주머니가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입은 닫아야겠다. 최옥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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