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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그 시간에 윤미는 대군이 건네준 두루마리를 품에 안고 열심히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간밤에 순흥 부사가 배소에서 물러간 뒤 대군은 윤미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윤미는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잡은 대군 앞에서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이선달이 일러준 대로 이런 식으로 가면 자신이 언젠가 대궐에 들어가 살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윤미의 손을 잡은 대군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풍랑 속으로 들어와 있구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단단히 듣거라."

 대군은 시렁 위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었다.

 "이걸 가지고 너희 집에 가 있다가 조용해지거든 다시 찾아오너라. 너를 데려왔던 이선달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떠나도록 해라. 내가 이렇게 구석에 몰리어 있는 게 답답하구나. 그렇지 않았으면 너를 한번 힘차게 안아주었을 텐데 말이다."

 윤미는 부끄러워 낯을 홍시처럼 붉게 물들였다. 윤미는 날이 새기도 전에 배소를 나와 마구령 초입의 주막을 향해 걸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던 대군의 손길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렇게 헤어졌다 못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미가 미처 집에 닿기도 전이었다. 뒤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김련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김련을 죽자고 따라다니던 급창과 함께였다.

 "윤미야. 잠깐 멈추거라. 내 말을 들어보거라."

 윤미는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기다렸다. 김련은 숨이 턱에 닿을 듯 몰아쉬었다. 

 "지금 네가 그걸 가지고 가면 안 된다. 그러면 대군께선 바로 끝장이다. 그걸 나를 다오."

 윤미는 품 안에 감추어 놓은 두루마리를 세차게 끌어 앉았다. 대군이 신신당부하던 말이 생각났다. 이선달 외에는 아무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이걸 빼앗으러 오신 것이라면 그냥 돌아가시지요. 제가 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놓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고. 이 멍청한 것아. 그게 잘하는 짓인 줄 아니? 지금 그게 아니면 대군께서 돌아가시게 생겼단 말이다. 그 두루마리가 있어야 대군을 살릴 수 있단 말이다."

 "그 말은 믿지 못하겠습니다."

 김련은 윤미가  막무가내로 버티자 두루마리를 펼쳐보라고 했다. 거기에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인데 얼른 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대군도 살리고 그 사람들도 모두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가 두루마리를 한 번 펼쳐보란 말이다. 이 멍청아."

 윤미는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쳐보았다. 김련이 옆에 다가와 같이 두루마리를 들여다보았다. 둘 다 글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련이 둥그런 원을 중심으로 적혀있는 글자들을 가리켰다.

 "여기 둥그렇게 적혀 있는 것이 모두 사람 이름이 아니냐. 이게 바로 사발통문이라는 것이다. 얼른 이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사태를 알려야 한다. 일이 다급하게 되었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대군마마를 살리느냐 죽이느냐는 우리 손에 달린 것이다."

 윤미는 한참 동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적힌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간단 말입니까. 이게 누구이름인 줄 모르잖아요?"

 "이런 맹꽁이. 우리가 일일이 찾아가지 않아도 한 사람만 찾아가면 모두 연락을 할 것 아니냐. 어디보자. 음 여기 안흥선 처사가 적혀있구먼. 내가 잘 읽을 수는 없지만 안 처사는 분명히 적혀 있을 것이다. 대군께서 자주 만나신 분이니까."

 "그럼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하긴 우리가 전해 줄 테니 너는 집에 가서 편하게 쉬고 있거라."

 "아니요. 저도 같이 가렵니다."

 "그렇게 하던가."

 김련은 윤미가 품에 품고 있던 두루마리를 남자인 급창에게 건네주도록 했다. 세 사람은 발길을 돌려 순흥으로 향했다. 그러나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순흥이 아니라 풍기였다. 윤미는 이유도 물어보지 못하고 급창의 뒤만 따라갈 뿐이었다. 세 사람이 점심때가 되어 도착한 곳은 풍기 현감 김효급이 있는 곳이었다.

 두루마리를 펼쳐본 풍기 현감 김효급은 뒤로 자빠질 만큼 놀랐다.

 "이이 이걸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네. 금성대군의 배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윤미는 풍기 현감 김효급이 화들짝 놀라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대군께서 어려운 일에 처하신 것 같은데 꼭 좀 도와주십시오."

 "으응? 그런데 너는 누구냐?"

 "저는 마구령 초입에 사는 윤미라고 합니다."

 "흐흠. 윤미라? 이름이 예쁘구나. 그래 알았으니 너희들은 이제 이곳에서 편히 쉬고 있거라."  

 "저희에게는 뭐가 없나요?"

 급창이 풍기 현감 김효급에게 아쉽다는 듯 물었다.

 "기다리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윤미는 일을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윤미와는 달리 김련과 급창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김태환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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