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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장세련
삽화.ⓒ장세련

 

한명청은 김장복에게 예천 댁의 주리를 틀라고 했다. 그런데 김장복은 차마 예천 댁의 곁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뭐야. 그년이 네 계집이라고 봐주겠다는 거냐? 그럼 네가 대신 형틀에 묶이겠느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뭐라? 그렇게 하겠다고? 이것들이 목숨 소중한 줄을 모르고 나대는구나. 너는 잠시 빠져 있거라."

 한명청은 예천 댁에게 받은 모욕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군사를 시켜 예천 댁의 주리를 틀게 했다.

 “아아악. 내가 죽어서도 네놈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어디 네 명대로 사는지 두고 보아라."

 예천 댁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군사들이 물바가지를 머리에 뒤집어씌워도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한명청은 홧김에 다시 안흥선의 주리를 틀었다. 까무러치면 물을 뿌려 깨어나게 하고 깨어나면 다시 주리를 틀었다.

 “다시 한 번 너에게 묻겠다. 너의 죄는 네가 잘 알고 있으렷다. 얼마 전 안동 장날에 안동부 군사들이 열한 명이나 살해당하였다. 이 일에 네놈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왔느니라. 이제 와서 감출 것도 없으니 소상히 고하도록 하라. 네 놈 집에 드나드는 식객들이 어떤 자들이었느냐? 그리고 그자들을 보낸 자가 누구였더냐?"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오. 아는 바가 없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네 식솔을 모두 형틀에 묶어야 대답을 할 테냐? 여봐라. 저 영감과 할멈도 형틀에 묶도록 해라."

 “그것만은 하지 말아주시오. 제발. 아는 대로 모두 말씀드리겠소."

 아무리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했어도 늙은 부모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흥선은 대군이 보낸 자객들이 자신의 집에 머물던 일까지 낱낱이 밝히고 말았다. 

 “우리가 이곳에 왜 왔겠느냐. 이미 필요한 정보는 모두 취하였으니 온 것이 아니냐. 여봐라. 이 자의 죄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식솔들을 모두 끌고 가 참형에 처하라."

 “네에!"

 군사들이 달려들어 형틀에 묶인 안흥선과 예천 댁을 풀었다. 두 사람은 이미 다리의 근육이 모두 뒤틀려져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군사들이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끌다시피 데려나갔다.

 “그리고 너. 김장복이라 했느냐?"

 “네. 나으리."

 “너는 사람을 죽여 보았느냐?"

 “웬걸요. 저는 산에서 살았지만, 토끼도 한 마리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계집년들이야 몇 년 죽여주었지만요. 흐흐."

 “이놈이 좆이 잘린 주제에 아직도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더냐. 너는 따라가서 네 손으로 저 식솔들의 목을 모조리 자르도록 하라."

 “네? 목을요?"

 “안흥선이란 자는 네 양물도 싹둑 자르지 않았느냐. 너는 목을 잘라도 시원치 않을 것 아니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장복은 새삼 자신의 양물을 자른 데 대한 분기가 치솟았다. 아무리 제 마누라와 바람을 피웠기로 서니 남자의 생명과도 같은 양물을 자르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김장복은 군사들을 따라갔다. 군사들이 닿은 곳은 죽계천에 있는 청다리였다. 청다리 아래에 안흥선의 식솔들을 줄지어 무릎 꿇리었다.

 군사 한 명이 묵직한 장도를 건네주었다. 김장복은 칼을 받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말 사람의 목을 치면 어떻게 되는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산채에서 멧돼지나 고라니 따위를 잡아다 먹은 적은 있었다. 이미 죽은 짐승의 배를 가르고 살코기를 발라내는 일은 아무 죄책감 없이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목을 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았다. 김태환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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