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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삼 시인·초록별지구수비대원
김윤삼 시인·초록별지구수비대원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과수원에 내려온다. 유성 같은 빛줄기가 나무 사이를 스며들며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얇은 안개가 감싸고 있는, 그 안에는 붉은 사과들이 더욱 빛을 발한다. 아름다움은 마치 자연 그 자체가 현실과 꿈 사이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나무 가지는 색종이처럼 반짝이며, 과실들은 붉은 보석처럼 그 위에 달려 있다. 

 시집간 누나를 따라 버스를 타고 처음 놀러 온 포항시 오천읍은 온통 붉은색 천지였다. 버스도 붉은색,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하는 해병대도, 사과도 붉은색이었다. 마치 열정의 도가니처럼 느껴졌다. 

 사과만큼 사람과 밀접한 과일이 있을까? 인류의 기원과 인간의 타락에 대한 비유인 아담과 이브의 사과에서부터, 그림 형제가 쓴 동화 백설 공주의 사과, 뉴턴의 사과, IT 전문기업의 로고까지. 또한 얼마나 많은 문학인이 소재로 삼았던가. 차례상과 제사상에도 자비와 사랑을 의미한다고 해서 빠뜨리지 않는 과일 중 하나다. 

 사과의 원산지는 발칸반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초 재배됐다고 한다. 1900년대 이후로 대구,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재배가 이뤄졌으며 색깔에 따라 홍색사과, 황색사과, 녹색사과로 구분된다. 비타민 C, A가 많이 함유되어 소화촉진, 심장건강 증진, 면역체계 강화 등에 도움을 준다.

 어느 때부터, 붉은색 사과가 흰색 사과로 변하기 시작했다. 봄에 냉해로 인해 흰색이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 위기로 안토시아닌 색소가 발현되지 않아 착색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일이 자라는 데는 반드시 온도 차가 필요하다.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면 나무가 호흡으로 쓰기 때문에, 열매가 아니라 나무가 자란다. 사과에는 당도가 축적되지 않아 맛이 없다. 농부가 사과 농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고 해도 상품성이 없어 밭을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 

 1℃ 상승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구 붉은 사과 면적은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강원도로 올라간 사과는 정선, 인제, 양구, 포천으로 점차 자신의 서식지를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지구온난화가 현 상태로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기후학자들은 2070년이면 강원도 일부에서만 사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100년 뒤에는 대한민국에서 사과가 사라진다는 경고도 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하는 초록별지구수비대는 반려 산과 반려 해변을 정해 쓰레기 줍는 활동을 한다. 쓰레기 주우며 달리기(플로깅), 해변 쓰레기 줍기(비치코밍), 줍깅 등 회원들이 모여서 마음도 나누고 초록별 지구 지킴이 역할을 스스로 한다. 기초적인 환경정화에서 채식 밥상 강의 등 환경 강사 활동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발적 운영을 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에 나로 시작해 우리로 번지는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과를 보면 느낄 수 있다. 누구나 마음껏 먹는 과일에서, 아무나 먹지 못하는 비싼 과일이 된 사과를 보며 지구온난화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포항시 오천읍 사과는 볼 수 없다. 사과를 먹어서 예쁘다는 대구 아가씨도, 기억 속에 접어 가지런히 매만질 뿐이다. 처음 버스를 타고 놀러 간 누나 집에서 본 과수원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사과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상큼하게 코를 간질인다. 사방에 넘쳐나던 그 붉은 빛깔의 환희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윤삼 시인·초록별지구수비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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