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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쇳덩이를 화로에 넣어 달구고 있다.

 

 "뚝딱뚝딱, 땅 따당, 치-이칙"
 울산 울주군 언양읍 언양시장으로 들어서면 대장간 특유의 금속성 음향 장단이 뚱땅뚱땅 울려퍼진다. '언양매일대장간'이란 보일락말락한 간판 아래 주인 박병호(65·울산 중구 성남동)씨는 화덕에서 시뻘겋게 달군 쇳덩이를 모루(달궈진 쇠를 올려놓고 두들길 때 쓰는 쇳덩이) 위에 놓고 망치로 연신 두들겨댔다.


 달궈진 쇳덩어리는 요술에 걸린 듯 칼과 낫, 도끼, 쇠스랑, 호미, 괭이로 변해간다. 두들겨진 쇳덩어리는 '쉬이익' 소리를 내며 물에 잠긴다. 이같은 담금질을 통해 연장은 더 강해진다. 쇠스랑은 8번, 칼과 낫은 5번씩 담금질한다.
 언양시장 한 귀퉁이 5평 남짓한 공간에서 쇳덩이를 가지고 요술을 부리는 박씨는 '매일'이란 간판 이름처럼 설날과 추석 전후 이틀씩 나흘을 빼고 361일 문을 연다.


 30여년 동안 새벽 6시30분 버스를 타고 나가 문을 여는 시간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가 대장간은 살아 움직인다.
 초등학교 졸업 후 울산 성남동에서 대장간 일을 배운 박씨는 30여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울산에도 장터나 마을마다 대장간이 하나쯤 있었고 대장간이 없는 마을들만 골라 다니는 '떠돌이 대장장이'도 적지 않았다.


 박 씨는 "30여년 전에는 주문이 넘쳐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일했다"며 "인정이 넘쳐나는 만큼 정담도 풍성했다"고 회고한다.
 어지간한 대장간은 시골에서 부자의 상징인 양조장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농사가 기계화되면서 호미, 괭이, 쇠스랑 등이 거의 불필요하게 됐다. 농기구 생산도 자동화돼 대장간은 급격하게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울산에서도 30년 전 20여곳에서 현재는 박씨네 '언양매일대장간(☎264-0666)' 하나만 달랑 남았다. 울산지역 대장장이도 현재 박씨뿐이다.
 박씨는 몇 년전 울산 북구에서 열린 쇠부리축제 때 함께 화덕을 만들고 대장간 모습을 재연해 줄 다른 대장장이를 찾았지만 결국 혼자 재연무대에 올랐다고.
 요즘 이 대장간에서 만드는 연장은 30여가지. 30여년 전에 비하면 10분의1로 줄어든 셈이다. 당시에는 지금은 별로 찾지 않는 물통의 쇠고리와 가마니를 만들 때 쓰는 10cm 정도의 쇠바늘, 나무껍질을 벗길 때 사용하는 훑이, 작두날, 블록을 만드는 틀까지 제작했다.


 그나마 일거리가 없어 최근에는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철근 절단작업 등도 마다않고 한다.
  "농기구 만들어 돈 벌기는 쉽질 않아. 왜냐고? 중국에서 주물로 만든 싸구려들이 하도 많이 들어오거든. 요즘 농약가게나 씨앗가게, 철물점 같은데 가보면 중국제 농기구들이 쫘악 널렸어."
 많은 담금질을 통해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양산되는 주조품보다 단단하고 모양이 다양한 것이 특징. 이 때문에 박씨의 대장간에는 마을 주민들이 찾아와 호미나 낫 등을 사간다.
 "쇠로 못만드는게 없어. 사람도 만들 수 있어. 근데 말을 못해"라며 농을 던지며 웃는 박씨는 내가 만든 물건을 값지게 사용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꼼꼼이 쇠를 만들어겠다는 생각뿐이다.


 박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대장간 일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배가 고파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나이들어 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감사하단다. 요즘 젊은이들이 고단한 노동이 수반되는 대장간 일을 외면하는 게 당연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박씨는 이 시대 마지막 대장장이다.  글=정재환기자 hani@ulsanpress.net  사진=임성백기자 sung@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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