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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기웅은 명실상부한 신불산부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3소대 대원 최주만을 사살한 이후부터 3소대원들 물론 어느 누구하나 쥐털만큼의 불평을 내는 부대원이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도기웅이 오기 전 날까지 실제적인 대장 노릇을 단단히 해오던 김모수까지도 도기웅에게 밀려 뒷방으로 밀려난 노인네처럼 끽 소리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도기웅의 언행은 위엄이 있어보였고 그의 실체에 누구나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전부대원이 보는 앞에서 도기웅에 의해 사살된 최주만과 함께 산으로 들어 온 문호자, 그녀만은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동작이 느림은 물론 부대 일에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연유가 있었다.
 지금도 아버지가 소학교 교사로 봉직하고 있지만 일찍이 음악에 소질을 보이기 시작한 그를 음악가로 키워보고 싶어한 아버지가 가끔 근무지인 학교로 데리고 가서는 학교 강당에 놓인 피아노를 치게하고 아버지가 두드리는 피아노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 그녀를 음악에 빠지게 한 것이다.
 그 후 아버지의 뜻을 따라 대구의 모여중을 졸업하고 이어서 서울로 유학, 이화여전 전문부를 나오게 된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테리 여성이었다.

 문호자는 여러곳에서 들어오는 혼담을 물리치고 있던차에 마침 기악을 전공하고 바이올린 연주실력이 뛰어난 최주만이 아버지의 근무처인 학교로 오면서부터 극히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둘은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서는 갈대밭이 늘어선 태화강을 거닐었다.
 어느날 두 사람은 태화강제방에 앉아 크로바로 시계를 만들고 반지를 만들어 서로 손가락에 끼워 주면서 낭만적인 젊은이들과 같이 백년가약을 약속 했지만 그 인연의 고리는 엉뚱한 곳으로 이끌리고 말았다.

 최주만의 은사인 강호명의 권유로 적색사상에 깊이 빠지면서 중독자가 되고 그런 다음 문호자와 함게 빨치산이란 죽음의 대열에 끼여들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여명원이자 여전사가 산에서 걸치고 있는 넝마같은 옷은 아예 걸쳐보지도 않는 말끔한 여자같은 인상을 풍기는 고급 여전사같이 항용 매무새를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최주만이 숨을 거두고 나서 요 며칠사이에 헝클어진 머리조차 다독거리지 않는 여자로 변해가고 있었고 행동 또한 드러나게 동작이 뜨는 것이었다.

 문호자는 도기웅에 대해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도기웅은 또 다른 음흉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신불산 지단으로 처음 왔을 때 단연 눈에 띄었던 말쑥한 차림의 문호자를 무심하게 보아 넘길 수 없을 만큼 돋보이는 그를 점찍어 둔 것이었다.
 산으로는 가을바람이 불어 나무 잎을 물들이고 있어도 낮에는 늦더위가 심하게 계속 되고 있었다.
 신불산의 억새가 서걱이며 계절을 재촉하더니 사흘 후면 추석을 맞게 되어있었다.

 도기웅이 해질녘이 되어 문호자를 찾는 것이었다.
 늘 놀란 토끼처럼 둥근 눈을 굴리며 겁이 많아 보이는 3소대장 허문수가 달려와 문호자를 지단장에게 가보라고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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