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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는 조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진왜란 시기부터 조작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는 일본인들이 과거사 치매에 면죄부 역할을 담당해 왔다. 사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보인 탈 아시아적 태도는 메이지 쿠데타를 주도한 3류 사무라이들의 얄팍한 국수주의가 그 뿌리다. 이토 히로부미 등 3류 사무라이들은 300여 년 간 지속되어 오던 도쿠가와막부의 '평화의 시대'를 거부하고 '살육의 시대'를 선택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지 쿠데타는 일본에 있어 근대화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섬나라 일본의 '광기의 역사'가 시작된 세계사의 불행이기도 했다.
지금 일본의 1만 엔 권 지폐의 밑그림에 나오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인 대부분이 정신적 지주처럼 생각하는 스승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수천 년간 일본의 멘토 역할을 해온 중국과 우리나라 등 아시아 국가들을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나쁜 친구'라고 비하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엮어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까지 썼다. 아시아의 촌티를 벗고 서구와 벗이 되자는 유키치의 세치 혀에 3류 사무라이와 그들을 추중하는 일본인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 광기의 역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현재진행형 일본정신으로 자리잡아 버렸다.
그동안 일본이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위안부문제에서 보인 태도는 사카모토 다카오라는 일본 가쿠슈인 대학 교수의 궤변으로 잘 드러난다. 그는 "위안부의 역사 기술은 화장실 구조에 대한 역사와 마찬가지로 교과서에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 언론은 위안부와 공중화장실을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며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흥분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자신들의 한마디 말에 흥분하는 모습을 일본인들이 오히려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춘원 이광수는 '탈아입구론'을 쓴 유키치를 두고 "하늘이 일본을 축복해 내려준 인물"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식의 친일 발언은 터져 나올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라는 보호막을 치며 친일의 당사자를 옹호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지만 시대적 상황이 부끄러움을 상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 하원이 맹방 일본에 대해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앞서 우리 국회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법안으로 60년 세월을 어둠속에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보듬어 줄 수는 없었는지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