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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몸의 항체와 면역 세포는 배아발생때 이미 '자기' 구분
타인의 세포나 조직이식 하면 비자기로 인식 거부반응 발생


   
 
19세기 중후반 외과의학에서 무균수술법과 마취제가 도입된 이후 의료기술로서의 수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후 의사들은 점점 대담한 수술을 시도하게 되고 기관과 조직을 한 사람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몸으로 옮기려는 노력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리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으로 철저한 멸균 상태에서 수술을 해도 이식된 조직이나 기관이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결국은 제거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 이식된 조직과 각막같은 특수한 예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 예외없이 나타나는 이 현상은 수많은 의사와 의학연구자를 곤혹스럽게 했으나 1940년대 말~1950년대 초에 그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나게 됐다. 이에 기여한 사람은 호주의 면역학자이자 바이러스학자인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Frank Macfarlane Burnet)과 영국의 면역학자이자 동물학자인 피터 브라이언 메다와(Peter Brian Medawar)이다.

 버넷은 감염성 질병에서 병원체와 숙주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특히 그는 숙주의 연령이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후 그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여러 편의 논문을 출판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중에 그는 배아 상태에서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된 몇몇 쥐들이 태어나 성장한 후에도 그 바이러스에 대해 항체를 형성하지 않는 현상에 대한 미국인 에리히 트롭(Erich Traub)의 논문을 접하게 됐고, 유전적으로 상이한 이란성 쌍둥이 동물의 발생과정 중에 일어날 수 있는 혈관 문합이 같은 혈액형을 가진 개체를 만든다는 레이 오웬(Ray Owen)의 논문을 읽게 됐다.

이러한 논문과 자신의 오랜 연구결과에 기반해 버넷은 1949년 대담한 이론적 주장을 담은  '항체의 형성(Production of Antibodies, 1949)'을 출판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대부분의 고등동물의 몸이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구분은 배아 발생 시기에 면역 세포가'자기'에 속하는 모든 분자와 세포들의 모양을 기억함으로 확정된다고 덧붙였다.

 비록 버넷 그 자신은 이러한 이론적 주장이 옳음을 보이는 증거를 제공하는 데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이 이론은 영국의 또 다른 면역학자 메다와에 의해 실험적 지지를 받게 된다. 그가 이끄는 런던 대학 연구팀은 어미의 자궁에서 발달 중인 쥐의 태아에 외부 세포를 주사했고 이 쥐가 태어난 후에도 이 외부 세포들은 어떠한 면역학적 공격도 받지 않고 쥐의 몸과 공존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반면 쥐가 태어난 후에 주입된 세포들은 격렬한 면역학적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몸에서 사라졌다.

더 흥미로웠던 점은 배아 상태에서 주입된 세포라 할지라도 숙주인 쥐가 면역 기관을 다른 개체로부터 이식받게 되면 이 면역기관이 만든 항체와 세포에 의해 거부된다는 점이었다. 이는 배아 발생 중에 발달 과정에 있는 면역 기관이 몸에 있는 모든 세포를 그 유전적 차이와 관계없이 '자기'의 일부로 인식한다는 버넷 주장에 하나의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몸은 왜 이런 기작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면역학뿐 아니라 진화학 등 생명과학의 다른 분야에도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메다와에 따르면 이는 생명체가 진화 과정에서 외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우며 자신을 보호하게 만든 방어 전략에 기인한다. 항체와 면역 세포 등은 이미 발생과정에서 기억된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비자기'로 인식해 공격하는데, 바로 이로 인해 우리는 일생동안 일어나는 수많은 감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대부분 조직이식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혈액형이 다른 사람간의 수혈이 실패하는 현상도 사실은 같은 이유다. 혈액형이 다른 피를 이루는 구성성분은 '비자기'로 간주돼 몸에서 퇴출되는 것이다. 우리 몸을 지켜주는 방어기작이 어떤 경우에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후 조직 이식과 기관 이식 기술은 더 많이 발전했고 면역억제제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경우에도 이식은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로 인해 신장, 간 등 몇몇 기관 이식이 가능해졌지만 이 경우 몸의 면역력 자체가 약화돼 외부 세균과 바이러스의 감염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의학의 갈 길은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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