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에 냠냠 빠져있어야 할 꼬마 두더지가 고민 때문에 길을 떠난단다. 그것도 함박눈 펑펑 내리는 한밤에. 배낭이 빵빵하게 부푼 걸로 봐서 제법 먼 여행인가 보다. 권투글러브라고 해도 될 만큼 두툼한 환타색 줄무늬 벙어리장갑이 한 판 승부를 예감케 한다. 한일자로 꽉 다문 주둥이에서도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밤마다 그리는 오줌지도가 고민인가? 동생이 태어난 게 고민인가? 봄이 오면 학교에 가야하는 게 고민인가? 깨알이라고 놀림 받는 눈알이 고민인가? 외나무다리를 놓아도 될 만큼 기다란 주둥이가 고민인가? 고민을 추적해 가는데 쿡쿡 웃음이 난다.
"얘야, 고민이 있을 때는 말이지, 고민을 말하면서 눈덩이를 굴려보렴. 그러면 고민이 다 사라질 거야."
언젠가 들은 할머니 말씀에 의지해 길을 떠나는 꼬마 두더지. 머리를 움막처럼 덮어오는 눈 도 잊은 채 눈덩이를 굴리는 두더지. 유령들의 행진 같은 굴참나무 검은 숲길을 지나, 살얼음 낀 한밤의 계곡을 지나, 미친 듯 산등성이를 지나고 있는 두더지와 눈덩이. 드디어 두더지의 입에서 고민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난 왜 친구가 없을까?" "겨울 내내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영영 친구가 안 생길지도 몰라." "눈덩이를 굴린다고 뭐가 달라질까?" "내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새싹을 닮은 연두색 개구리 다리가 쏙! 귀여운 토끼 귀가 쏙! 갈색 털북숭이 여우꼬리가 쏙! 연분홍 멧돼지 콧구멍이 쏙! 시커먼 곰 발목 두 개가 쏙! 눈덩이 우주 여기저기서 피어난 것들은 싱싱하면서 우스꽝스럽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희미한 소리에 끌려 우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너구리. 아, 그 속엔 친구가 필요하다는 동물들로 그득하다. 외로워서 피리를 불고 있었다는 여우와 저녁을 함께 먹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멧돼지, 친구 삼아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는 곰, 역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토끼,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개구리와 너구리 여섯 마리 동물들이 협력하여 눈덩이 터널을 헤쳐 나오는 장면을 유쾌하게 감상할 수 있다. 난리북새통 탈출 중에도 끝끝내 꿀잠에 빠져있는 연두색 개구리를 찾아내는 눈이 즐겁다.
빚, 걱정 같은 부정적 대명사로 쓰이는 눈덩이를 소망과 희망의 눈덩이로 바꿔놓은 김상근 작가! 고민의 눈덩이를 굴리고 굴려 멋진 곰돌이 눈사람으로 우뚝 앉혀놓은 작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린애 신발짝만 한 두더지도 고민을 해결하려 눈덩이를 굴리는데 하물며 사람인 내가 고민한테 져서야 되겠는가. 무더위에 지친 몸을 일으켜 일상과 맞서려 나간다. 고마운 나의 모닝과 함께. 남은우 아동문학가
- 기자명 울산신문
- 입력 2017.07.31 20:03
- 수정 2017.07.3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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