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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는 바람과 돌, 여자가 많은 섬이다. 지난달 28일 제주도 서쪽 해안가는 늦여름휴가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현무암 위를 걷는 것은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제주도는 동경 126도, 북위 33도,
한반도 서남해상에 위치한다.
총면적 1,848.5㎢인 제주는
대한민국에 소속된 섬들 중, 가장 큰 섬이다.

화산폭발로 형성된 섬 제주에서 사람들은
척박한 토지를 일구고,
세찬 해풍과 가뭄을 극복하며
먼 옛날부터 끈질긴 삶을 이어왔다.
제주인은 풍족하지 못한 자연환경에서,
육지와는 차별화 된 삶의 방식을 만들어왔다.
옛 제주인의 삶은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문화유산이 됐다.

   
▲ 오설록 녹차박물관에서 바라본 차 밭과 찻 잎의 습기를 제거하는 '바람개비'.


북태평양고기압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 지난달 27일.
제주의 하늘은 비를 동반한
짙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이날 제주의 날씨는 서해상으로 북상하는
열대저기압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28일 오전까지 내린 비의 양은
제주시 106mm, 서귀포시가 183mm였다.
28일 새벽에는 제주도 전역에
호우경보와 강풍주의보가 발효됐고,
제주 앞바다 남해서부 먼 바다에는
풍랑주의보가 발효됐을 정도였다.
제주에 첫 발을 딛자마자
먼저 만난 것은 바람이었다.

   
▲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현무암 주상절리'.


#바람
제주는 매년 여름이면 한반도로 올라오는 장마와 태풍의 길목이 된다. 장맛비와 태풍이 울산은 한번쯤 스쳐지나가지 않을지언정 제주는 그렇지 않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먼 옛날 제주도가 형성되고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파도와 바람은 제주인이 생존을 위해 극복해야 할 것이 됐다. 흙벽 대신 돌로 담을 만들고, 나직한 초가지붕 위에 새(띠풀)을  얽어매는 등의 방식으로 바람과 파도에 대항해 자신의 터전을 지켜왔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그 흐름은 기후를 만든다. 제주의 기후는 한반도와는 달리 아열대의 성격을 띤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1년 내내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해양성 기후로,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반도보다 일교차가 적다. 그래서 겨울철 원예작물의 월동재배와 아열대과수의 시설재배가 가능하다.
 녹차나무 역시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제주에서 키우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서광다원은 단일 녹차 재배단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크기는 약 20만평에 달한다. 서광다원 내 녹차박물관 '오 설록(o'sulloc)'에 들러 아이스 녹차 한 컵을 들고 전망대에 오르면 녹차밭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녹차밭 군데군데에 높이가 10m 남짓 돼 보이는 바람개비 기둥이 서 있다. 이 기둥들은 제주의 바람을 이용해 녹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습도가 높은 제주라 안개가 끼면 찻잎에 습기가 찰 우려가 있는데, 바람개비가 습기를 없애주는 것이다. 바람은 곧 제주의 에너지다.

   
▲ 낮은 돌담과 돌담 사이로 이어지는 제주의 '올레길'.


#돌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제주 한 가운데 솟은 한라산은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현무암도 마찬가지다. 회색 또는 검은색을 띄는 이 암석은 제주를 대표하지만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살아가기엔 거칠기만 하다. 제주인들은 땅을 덮은 현무암 덩이를 치워 밭을 일구며 그들의 삶을 개척했다. 현무암이 마냥 제주인들의 삶을 척박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키 180cm의 성인의 다리 길이 정도의 돌담과 제주의 상징 돌하르방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도둑과 거지, 대문이 없는 제주의 옛 집과 옛 집 사이에는 돌담과 길이 있을 뿐이었다.
 오늘날, 제주도는 옛 제주인들의 지혜를 살려 길 문화를 만들었다. '올레길'이다. 올레란 마을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제주에만 있는 아주 좁은 골목을 말한다. 길고 굽이진 돌담길로 이뤄진 올레는 바람의 속도를 완화시키고 집안을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
 해안가의 현무암도 '주상절리'를 이뤄 바다를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주상절리란 화산폭발 때 용암이 굳는 속도에 따라 4~6각형 등의 돌기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주로 용암이 급속히 냉각된 현무암에서 잘 나타난다. 화산폭발시 용암의 표면이 먼저 바닷물에 냉각 돼 수축되면 표면에서 아래쪽으로 갈라지면서 수축이 일어나게 된다. 제주도 바닷가에는 현무암 주상절리들이 해안가를 중심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암석 표면에 뚫려있는 구멍들 사이로 바다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여자
제주가 '여자'가 많은 섬이 된 것은 '해녀'의 역할이 크다. 거친 파도 속으로 들어가 전복과 미역을 따는 해녀는 바다로 나가서 일하는 여성의 섬 제주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주의 남자들이 바다로 나가 어로작업 중 조난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여자가 수적으로 많았던 것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제주의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여자들도 남자와 함께 일터로 나오지 않으면 안됐다.
 옛 제주 여성은 밭에서 김을 매지 않으면 바다에서 물질을 해야 하는 운명에 순종해 왔다. 소녀들은 7∼8세 때부터 헤엄치는 연습을 시작해 12∼13세가 되면 어머니로부터 두렁박을 받아 얕은 데서 깊은 데로 헤엄쳐 들어가는 연습을 했다.
 15∼16세가 되면 바닷속에서 조업(操業:물질)을 시작해 비로소 잠녀, 즉 해녀가 되고, 17∼18세에는 한몫 잡이의 해녀로 40세 전후까지 활동했다. "제주도 여자가 부지런하다"는 말은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꾸려나갔던 해녀들의 모습에서 나왔다.
 제주를 수식하는 말은 '삼다도' 뿐만 아니다. 삼무도(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말), 삼려도(인심, 자연, 귤) 등의 말도 있다. 제주는 거친 터전을 일궜던 옛 사람들의 지혜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제주는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탐나는 섬'이 됐다.  글·사진=윤수은기자 usyse@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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