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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소외된 존재들에게 보내는 나직한 '속삭임'
모르는 여인들(신경숙·문학동네)

지난 2003년 <종소리> 출간 이후 8 년 만에 출간되는 신경숙의 여섯번째 소설집이다. <모르는 여인들>은 세계로부터 단절된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풍경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7편의 순례기로 익명의 인간관계 사이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특유의 예민한 시선과 마음을 집중시키는 문체로, 소외된 존재들이 마지막으로 조우하는 삶의 신비와 절망의 극점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빛들을 포착해내어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바닥 모를 생의 불가해성을 탐색한다.

 긴 시간을 두고 새로 읽는 그의 단편들은 한 글자 한 글자, 마치 점자를 읽듯 천천히 눈으로, 손끝으로, 마음으로 더듬어 읽어내려가게 된다. 글자 하나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그 사이사이 행간에, 작가의 낮은 숨결이, 들숨과 날숨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 문장의 숨결을 따라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천천히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또 천천히 깊은 숨을 토해내는 사이 그의 숨결과 나의 숨결이 엉키어든다. 작가와 소설 속 인물들, 그리고 독자가 뿜어내는 더운 숨결이 한데 엉키어드는 것. 어떤 독서가 이런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언젠가 소설가 김훈은 그의 소설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세상의 낯선 시간과 공간과 관계 속에 하나의 인간 존재가 놓여질 때 그 존재에게 숙명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것들을 향하여 신경숙의 글은 간절한 발신음을 보낸다. 그에 답하는 희미한 수신음들이 신경숙의 글 속에서 매우 정밀하고 단정하게 포착돼 글의 켜와 글의 결을 이루고 그 숙명적 결핍에 대한 인간의 교감이 그의 글을 아름답게 긴장시키고 있다."
 8년 만에 선보이는 신경숙의 단편들을 앞에 두고 새삼 오래전 그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이 7편의 단편이 신경숙 문학의 가장 깊은 곳에서 떠올리는 한 바가지 샘물과도 같아서일 것이다.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으나 눈에 띄지 않는 것들, 작고 희미하게나마 끊임없이 제 존재를 드러내지만 끝내는 수신되지 못하던 그 목소리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그들이 보내는 희미한 발신음을 포착해내고 불러내어 보듬어주는 작가의 예민하고 섬세한 손길, 눈길, 그리고 숨결….
 세상 모든 숨겨진 존재들, 사물들, 풍경들이 뿜어내는 희미한 숨결과 그를 어루만지는 작가의 더운 숨,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어쩌면 이름없는 존재인 동시에 그 순간을 함께 호흡하게 되는 독자들의 깊은 숨이 한데 엉키어드는 일. 이것은 분명 신경숙의 문학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소년을위로해줘(은희경·문학동네)

은희경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
 이 소설은 2010년 1월부터 7개월 동안 '문학동네' 카페에서 일일 연재되었다.
 힙합을 즐기는 열일곱 살 고등학생 연우의 이야기, 평범하지만 특별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연우는 이사 후 새로 전학 갈 학교를 추첨하는 자리에서 동급생 태수와 마주친다. 태수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음악, 그리고 어느새 비트에 맞춰 함께 움직이는 심장의 박동. 새로운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는데….
 새로운 우정, 이 세상이 낯설고 두렵기만 한 소녀 채영과의 만남, 떨림, 첫사랑, 외부세계와의 갈등, 원치 않는 작별, 그리고 재회까지.
 여름부터 겨울까지, 그리고 봄눈이 내리는 새로운 계절에 이르기까지, 소년들의 이야기, 결국은 영원히 소년인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조금쯤은 그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지도.

명동 음악살롱에서 펼쳐지는 '치명적 사랑'
#녹지대1, 2(박경리·현대문학)

 한국문학의 어머니, 고 박경리가 1964년 6월 1일에서 1965년 4월 30일까지 부산일보에 연재한 장편 소설로 47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한국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숙부의 집에서 기거하며 비록 숙모에게 눈칫밥을 먹는 처지지만 당차고 자유분방한 성품으로 늘 인기가 있는 인애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바로 김정현이라는 존재다. 하지만 그는 안개에 쌓인 것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만날 수 있을 듯하지만 만나지 못하고 서로의 마음이 닿은 듯하다가도 이내 멀어진다. 그 이유는 인애와 정현 사이에 '그 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아우라만으로도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그 여자'의 정체와 정현과의 관계는 이야기의 후반에 가서야 충격적인 사연으로 드러난다. 치명적인 사랑이야기에 서스펜스가 흐르는 아주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녹지대는 명동에 있는 음악 살롱의 이름으로 주인공 하인애가 시인의 꿈을 키우며 같은 꿈을 꾸는 부류들과 어울리는 곳이고 자신의 영혼을 송두리째 앗아갈 사랑을 만나고 그와 어긋나 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박완서 선생 소설 6권 묶어 작품집 발간
#기나긴하루(박완서·문학동네)

 박완서 1주기에 맞춰 새 작품집이 나왔다. 생전 마지막으로 묶어낸 '친절한 복희씨(문학과 지성사)' 이후 작고하기 전까지 발표한 세편의 소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빨갱이 바이러스','갱년기의 기나긴 하루'가 실려있다. 김윤식 신경숙 김애란이 추천한 세작품 '카메라와 워커','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닮은 방들'을 합하면 총 6편의 소설이 그의 마지막 작품집 <기나긴 하루>로 묶였다.
 첫 수록작인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와 그 빈자리를 늘 모자람 없이 채워주던 한학에 능했던 할아버지, 딸의 교육을 위한 투지와 신념으로 자신의 희생을 불사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빨갱이 바이러스'는 세 명의 여자가 남자들로부터 입은 상처와 사연들을 다뤘다. 전쟁으로 친척간에 벌어진 살인의 비밀을 주축으로 전쟁의 상처, 가부장제의 모순 등을 응축적으로 이야기한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갱년기를 겪는 주부가 지적인 시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를 상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가족애와 물신주의를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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