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국장이 경주를 찾았을 시각이었다. 대호 교수와 궁우리 아이들은 수염 긴 자들에 의해 움집 방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어디서 온 자들이야? 앞으로 나와 봐!" 곰 가죽 망토를 두르고 큰 나무 의자에 앉은 자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불빛에 번들거리는 구릿빛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아이들은 무서워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유주는 움집 안에 흙과 풀냄새를 맡으며 주위를 날카로운 눈길로 살폈다. 벽은 억새풀로 꼼꼼하게 엮여 있어 그 어떤 모습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서로의 옷자락을 꼭 붙잡은 채
지켜야 했던 불대호 교수가 나간 후 상우 연구원은 동굴에서 불을 지키고 있었다. 불이 꺼져버리면 대호 교수가 원서 연구원을 찾더라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불을 지켜야했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계속 불을 지키는 상우는 점점 지쳤다.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깜박깜박 졸려오는 졸음을 물리치기는 힘들었다. 비몽사몽간에 동굴이 무너질 듯 큰 소리가 울리더니 동굴이 흔들렸다. 깜짝 놀란 상우는 불을 제일 먼저 보았다. 꺼지지 않은 불을 보고 상우는 안심했다. 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들고
원서 연구원을 찾아 시선 마을로그들은 부랴부랴 계곡으로 나와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만나다니! 나 찾으러 온 거야?" "맞아요, 할아버지. 그런데 원서 아저씨는요?" "같이 찾아야겠어" "아직 못 찾으셨어요? 그럼 할아버지 혼자서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안 무서웠어요? 조금 전 만났던 용 같은 동물은 없었어요?" 윤서가 대호 교수를 보고 물었다. "응, 그렇지만 동굴을 벗어나는 데는 고생했지. 너희를 만나니 이제 안심이 돼. 그래 국장님이랑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모터보트를 타고요" "모터보트라니?" "아 예
돌망치를 받아 동굴에서 나온 대호교수는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렵지 않을 듯했다. 마음의 방패처럼 든든하게 느껴지는 돌망치를 가방에 넣고 교수는 바쁘게 걸었다. 발밑에서 사르락사르락 낙엽 밟히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무 타는 듯한 냄새가 은근히 풍겨왔다. 바깥에서 요리를 할 때 태우는 나무 냄새 같았다. 교수는 코끝을 벌름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는 건가?' 그는 고개를 들어 냄새가 나는 쪽을 살폈다.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냄새가 진해졌다 옅어지곤 했다. 교수는 점점 걸음을
골짜기는 마치 미로 같았다. 오솔한 계곡이 나무뿌리처럼 산 속으로 뻗어 있고, 나무들은 계곡을 향해 가지를 뻗어 있었다. 대호 교수는 붙잡을 듯 뻗어 나온 가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걸었다. 그가 보았던 지도 어디에도 없는, 숨어 있던 계곡 같았다.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골짜기들. 어디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피융~'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을 가르더니, 대호 교수의 귀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자, 뒤이어 '으하하하!' 하고 거친 웃음소리가 숲을 울렸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
애꾸눈 사냥꾼쯤은 무섭지 않아"네? 이걸 어디서 주웠어요?" 윤서가 물었다. "알 수 없지. 여기는 계곡이 여러 갈래라 아들을 찾으러 다니다 어디서 주웠는지 나도 기억이 깜빡깜빡해서 잘 모르지. 그 자를 본 건 확실해. 근데 내가 바빠서 아무 것도 못해 준걸. 그렇지만 너희는 행운이야, 우리 아들 생일이라 먹을 게 많으니까" 그런데 처음엔 친절한 목소리로 말하던 엄마용 목소리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 곳에서 빨리 벗어나!' 귀에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경주가 빠르게 반응했다. "아, 저희는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서 밥은 다음에 와서
"청어 떼를 몰아다 주고, 용에게서 받았다고요?" 영서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래. 내가 몰고 온 청어 떼는 아주 기름지고 맛있어. 바다에 잘 나가지 않는 용이 요리해 먹기 아주 좋아하거든." 어미고래가 지느러미를 펄럭거리며 말했다. "그럼, 용을 찾아 가야잖아. 용이 어디 사는지 좀 알려 줄 수 있어요?" 유주가 어미고래 눈을 보면서 물었다. "그러지. 용한테 데려다 주는 일은 어렵지 않아. 그런데 배가 아까 멀리 가던데, 우선 내 등에 올라." "와! 이런 일이!" 유주가 어미고래 등에 오르며 외쳤다. 그러자 아이들 셋이
퀴즈를 내 봐!"그럴지도 몰라. 암튼 급해. 거북이가 내는 수수께끼를 푸는 수밖에!" 임 국장은 침을 삼키고 거북이를 똑바로 쳐다봤다. 궁우리들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거북이가 목을 치켜세워 목청을 다듬었다. "거 봐요. 문제를 풀지 않으면 저곳으로 갈 수 없다니까요! 첫 번째 문제입니다" 거북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거북산 높은 바위로 두 줄기 햇살이 비쳤다. 궁우리 일행은 그쪽으로 모두 눈길이 쏠렸다. 그러자 햇살이 그 곳에 글자를 적어 나갔다. ★ 이 계곡에 있는 나무입니다. 열매가 식량이 되기도 하는 이 나무는 무엇
초록 섬으로"호랑이가 말한 거북마을 초록섬… 설마 그곳과 관련이 있는 건가?" 임 국장이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휴대폰을 보던 임 국장 눈이 동그래지며 외쳤다. "원서 연구원 거야. 그가 이 절벽을 통해 선사세계로 온 게 분명해!" "원서 아저씨는 암각화 절벽에서 실종됐지 않아요?" 영서가 놀라 하는 말에 임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리는 다른 길로 온 거야. 그는 그곳에 선사세계와 이어지는 길이 있다는 전설을 가끔 말하곤 했어. 그 길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범굴을 나와 산 정상으로 가던 유주가
호랑이와 휴대폰아이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긴장감이 산 속을 에워쌌다. 호랑이는 앞에 선 아이들이 쫄아 있는 모습에 표정을 바꾸었다. 무섭게 빛을 뿜던 눈빛을 누그러뜨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보던 아이들인데, 어디서 온 거야?" “우린 궁우린데? 넌 누군데?" 윤서가 대뜸 겁도 없이 물었다. 호랑이가 크게 하품을 하고서 눈을 껌뻑거리고 산을 빙 둘러보고 소리쳤다. “난 이 산의 산신령 호돌이다. 누가 이렇게 땅을 쿵쿵거리나 했더니!" “산신령이면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낮잠을?" 윤서가 당돌하게 하는 말
선사세계로!임하우 국장은 암각화 방에서 바위틈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아이들과 급히 방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왼쪽으로 꺾은 그는 거대한 문 앞에서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센서에 갖다 댔다. '찰칵.' 문이 열리자, 그 안에 펼쳐진 풍경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 바다가 있고 그 위에 고래 모형 보트 한 척이 물결 위에서 출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와… 노란 고래잖아?" 경주가 소리쳤다. "자, 타렴. 이건 현실세계에서 선사세계로 가는 보트란다." 임 국장이 손짓했다. "와! 고래를 탄다!" "물이 조금 무서
암각화의 틈, 선사로 통하다!배가 절벽까지 도착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교수님, 겨우 다 왔습니다. 배를 묶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 절벽이 바람을 막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두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배를 두고 암각화가 있는 바위로 올랐다. 다행히 그곳에는 사람이 설 수 있을 만큼 튀어나온 넓은 너럭바위가 있었다. 그들이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갑작스럽게 진동이 전해졌다. “어, 어! 조심하세요! 아침보다 강도가 훨씬 커요!" “교수님도 조심하세요!" 두 사람은 바위를 붙들고 흔들림이 멎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흔들림이 잦아들
6. 암각화 바위에 닥친 위험"무슨 일이에요?" 유주가 임 국장을 따라 달리며 다급히 물었다. "이럴 수가… 대호 교수님과 관련 없었으면 좋겠는데." 임 국장이 목걸이를 문 센서 부분에 갖다 댔다. 소리 없이 문이 열려 아이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문 안쪽은 벽면에 암각화 이미지들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방 중앙에는 반구천의 두 암각화 모형이 앞뒤로 전시되어 있었다. "우와…!" "진짜 암각화 같아요!" 아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감탄하던 그때, 웅! 웅! 웅! 둔탁한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천장에 붉은 경고등도 깜빡였다.
다음 날, 팜스테이에서 밤을 보낸 궁우리들은 아침 일찍 궁터로 모였다. "일요일이니까 실컷 연습해야지. 너희는 걱정 없지?" 유주가 궁터로 걸어가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너도 잘 쏠 수 있을 거야." 경주가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안녕! 다들 일찍 일어났구나!" 진옥 궁사가 궁터에서 아이들을 반겼다. 마흔 중반인 그녀는 아이들의 활쏘는 자세를 살피며 말했다. "늘 말하지만, 활은 바른 자세로 쏴야 명중할 수 있다 했지?" "네!" 아이들은 신나게 대답했다. 진옥 궁사가, 활을 들고 발바닥 그
고래산에 이르자 휴대폰에서 카톡 소리가 울렸다. 대호 교수는 얼른 확인했다. 암각화연구원을 확인할 암호를 암각화연구소에서 보낸 문자였다. '원서 연구원이 어디 있기에 아직 찾지 못한 걸까. 과연 내가 잘 찾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해질 무렵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높다란 산이 포근히 감싸고 있는 깊은 계곡이 넓은 호수와 연결돼 있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반구대 계곡을 보고 대호 교수는 감탄했다. 암각화 전망터에 온 대호 교수는 연구원이 있나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
해마다 5월, 반구마을이 일 년 중 가장 시끌벅적한 때가 온다. 산골 축제가 열리는 때이다. 축제에 신청한 궁우리 아이들이 용등산 자락에 있는 궁터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난 과녁이 잘 보이지 않아." 윤서가 활을 내리며 투덜댔다. “나도 그래. 이제 쏠 만큼 쐈으니 내일 다시 하자!" 산이가 아이들을 부추기자, 경주가 허리를 쫙 펴며 재빨리 말했다. “나도 팔 아파! 그만 쏠래." “난 더 연습해야 해." 영서는 침울한 표정으로 활을 내려다보았다. “넌 누구보다 연습을 많이 했잖아. 잘할 텐데, 무슨 걱정이야?" 윤서가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누구보다도 난감한 것은 영월 군수와 임영복이었다. 보다 못한 영월 군수가 버럭 고함을 쳤다. "무슨 짓들이오? 방금 주상전하께서 승하하셨다 하지 않소. 모두가 무릎을 꿇고 곡을 하시오." 웃음소리가 잠시 끊어지기는 했지만, 곡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떼꾼으로 일하는 산 사람이 당돌하게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좋은 잔칫날 곡을 왜 합니까? 곡은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즐겁게 놀아봅시다. 얼쑤 좋다. 왜 이리 좋을꼬." 이선달이 임영복의 안색을 살피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제 네놈의 운도
임영복이 자신의 부모에게 큰절을 올리고 윤미와 아이들에게도 절을 올리게 했다. 각동 강변의 돌을 짊어지고 떠나간 지 꼭 이십 년이 흘렀다. 멀리 각동 강변 건너편의 뼝대바우를 쳐다보았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발아래 도열해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성영의 아버지 조영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꾀죄죄한 옷차림에 거지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딸과 아내가 죽고 나서 새장가는 엄두도 못 내고 홀아비로 지내니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임영복은 조영환을 무대 위로 불러올렸다. 임영복 앞에 선 조영환은 두 다
특히나 우족이나 돼지족발을 다루는 솜씨가 신기에 가까웠다. 돼지족발을 다룰 때는 불을 피워 털을 태운 다음 칼로 긁어내는 게 보통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곱 치 칼 한 자루로 털을 깨끗이 잘라낸 다음 뼈와 뼈 사이의 힘줄을 모두 발라내었다. 족발을 들고 작업을 하는 동작이 다람쥐가 알밤을 들고 놀리는 듯했다. 사람들은 예전에 동네에서 사라졌던 임영복이란 사내가 되돌아와서 사는 걸로 착각하는 때도 있었다. 밤마다 각동 강변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그런 착각에 빠질 만했다. 임영복이 영월에 온 뒤 사흘 뒤에 각동마을에는 큰
정축년에 순흥이 폐부가 된 후 고치령과 마구령을 넘어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장꾼들이 넘어 다니던 길은 토끼나 고라니가 다니는 길로 변했다. 정축년에 목숨을 걸고 소백산을 넘어와 영월에 자리 잡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순흥은 역모의 고장으로 낙인찍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렸다. 정축년으로부터 십일 년이 지난 무자년 9월이었다. 영월에는 때 아닌 손님이 들이닥쳤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의금부도사가 식솔들을 거느리고 영월을 방문했다. 식솔이라 봐야 젊은 새댁과 똘똘한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