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애호가 할아버지 산소에 느티나무 바둑판 헌정직장에서 은퇴한 후 고향에 와서 표고버섯 농사를 짓기 위해 할아버지가 남긴 산에 20평의 건물을 지었다. 취미로 목공예를 시작하면서 지금은 창고 겸 목공방, 쉼터로 사용하고 있다. 목공예에 가장 적합한 느티나무를 구하려고 애쓰던 중, 후배의 밭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를 얻을 수 있었다. 포클레인을 동원해서 엔진톱으로 베어 옮긴 후 산속 그늘에서 2년간 자연 건조했다. 이후 제재소에서 켜서 판재로 만들었는데, 그중 직경 70cm가 넘는 판재 하나로는 바둑판을 만들고 싶었다.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울산 방어진 대왕암에서 일출을 보며 아침을 맞이했다. 올해는 을사년, ‘푸른 뱀의 해’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 채워져 갈 것이다. 나는 일출 사진을 찍으며 빛과 함께 올해를 시작했다. 새해가 밝으면 늘 내가 찍은 일출 사진으로 연하장을 보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주위 동료와 고객들에게 우체국 연하장에 일출 사진을 한 장씩 넣어 보낸 게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해 인사가 어느덧 42년이라는 세월 동안
백두산 서파(西坡, 해발 2,470m) 코스의 공식적인 입산은 도로 보수공사 때문에 4일 후부터여서 출입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백두산 전문 사진작가이자 노련한 마당발 가이드인 조선족 맹철 님의 활약으로 입산이 가능했다. 어렵게 서파 주차장 옆 여행객 휴게소에 숙소를 정해 짐을 내리고, 한국식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비빔밥은 우리 비빔밥과 재료와 맛이 비슷했고, 백두산 인근 식당의 대표 메뉴로 자리잡고 있었다. 밤에 은하수와 별 사진 촬영을 위해 천지에 갈 예정이어서 같이 간 일행 중 일부는 남고, 일부는 낮 풍경 촬영을 위해
북파 천문봉에서 만난 일출과 천지 백두산의 일출과 아침 풍경 촬영을 위해서 단잠을 떨쳐내고 새벽 1시 30분에 승합차를 타고 이도백하(二道白河)에 있는 호텔을 출발했다. 어렵게 관계자의 특별 허가를 받고, 거액의 입장료를 지급하고서야 가능했다. 백두산 산문을 지나서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올라 3시에 천문봉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두운 길을 랜턴으로 밝히고 천문봉 근처 천지가 넓게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펼쳤다. 천지는 어둠과 안개 속에 감춰져 있었다. 6월말인데도 백두산 산정은 무척 추웠다. 겨울 복장으로 채비를 했는데도 찬
몽골 최북부에 있는 홉스골호수의 겨울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2월말 7박 8일의 일정으로 8명으로 꾸려진 촬영팀에 합류해 몽골로 향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칭기즈칸공항에 도착해서 한국어와 한국 사정을 잘 아는 가이드 겸 운전자들이 운전하는 두 대의 승합차에 타고 길을 떠났다. 380km의 먼 거리를 달려 어둑해진 에르데네트(Erdenet)의 숙소에 도착했다. 에르데네트는 인구 10만 명으로 몽골의 제2의 도시이지만 겨울철이라 호텔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서 우리가 머문 숙소의 시설은 열악했다. 준비해간 삼겹살과 햇반으로 저녁을 해결
홉스골호수에서 출발한 이번 몽골 출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목적지, 자르갈란트(Jargalant) 강을 찾아 떠났다. 울창한 침엽수림을 지나 크고 작은 눈 더미를 넘고, 개울과 호수가 얼어붙어 겨울에만 생기는 길을 따라 차는 계속 달렸다. 튼튼한 사륜구동의 랜드크루즈를 운행하는 ‘바트 무흐’라 불리는 베테랑 기사는 그 험한 눈길을 미끄러지거나 큰 흔들림없이 능숙하게 운행했다. 160km 거리를 3시간을 달리자 설원에 마을이 나타났고, 휴대폰에 통신이 잡히기 시작했다. 몽골의 행정구역은 우리의 도(道)에 해당하는 21개
황산의 촬영을 마치고 장시성(江西省, Jiangxi)에 있는 삼청산(三淸山)으로 갔다. 중국에서는 황산과 가까운 산이라고 소개하지만 263km 떨어져 있고, 차로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진사케이블카(金沙索道) 승강장에서 전혀 기다리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 승강장에 도착하니 내린 눈이 많이 남아 있었고, 운해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안내 표지판에는 한글로도 병기되어 있었다. 북쪽으로 난 잔도(棧道)를 걸으며 삼청산과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첩첩산중의 암벽에 선반처럼 콘크리트로 만든 잔도는 황산의 가파른 돌 계단과는 달리
황산 최고의 절경,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오전 촬영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했다. 초췌해진 얼굴을 씻고, 이불 속에 긴 시간 추위에 떨었던 몸을 묻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 점심식사 후 곧바로 촬영을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새벽에 나갈 때부터 함께 촬영을 했던 중형필름 카메라 '노블렉스(NOBLEX) 프로 6/150 E'와 슬라이드 필름 '코닥(KODAK) E100'을 망설이다가 다시 챙겨 넣었다. 몸이 지치니 카메라 배낭은 천근만근이었다. 백아령 서쪽 광명정(光明頂, 해발 1,860m)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었다. 광명정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중국 황산(黃山)의 출사팀이 꾸려져 참가를 했다. 황산 현지의 일기예보를 계속 관찰하며 기온이 가장 추운 시기를 골라 미리 예약한 항공편까지 변경해서 1월 하순 황산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중국 난징(南京) 공항에 도착해 내륙 황산시로 이동해 호텔에서 1박을 했다. 다음 날 운곡사(云谷寺)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8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백아령(白鵝領, 해발 1,667m)에 올라 황산에 입산을 했다. 이미 많은 눈이 내려 있었고 새로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묵직한 카메라 장비를 메고 눈이 쌓인 수많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울산에도 올 11월 중순 첫눈이 내렸다. 많이 쌓이지 않았고 햇살에 오래지 않아 녹았지만 그 눈이 반가웠다. 펑펑 쏟아지는 눈,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리는 설경이 새삼 그리웠다. 눈보라 속에서 매서운 강추위를 견디며, 설경 촬영을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던 지난 날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제는 체험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소중한 추억이었다. 내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 설경에 이야기를 담아본다. 아아~! 백두산!우리 한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을 떠올리면 먼저 ‘아아~!’ 감탄사부터 나온다. 여러
들판에 벼가 익어가는 걸 보자 오래 전에 사진 촬영을 위해 가봤던 하동 평사리 들판이 떠올랐다. 그리고 30대에 읽었던 소설 ≪토지≫가 생각났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졌다. 누렇게 익은 벼가 베어지기 전에 그 황금빛 들판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먼저 위치가 높은 고소성에 올랐다가 높게 자란 나무가 들판을 가려서 다시 한산사(寒山寺) 언덕으로 내려왔다. 벼가 익어가는 평사리들(무딤이들)과 동정호, 부부 소나무, 섬진강, 평사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들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었다. 날씨가 맑은 다른 날, 3시간 산행하
동해안엔 750km의 걷기 여행길, ‘해파랑길’이 있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총 52개 코스로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연결하고 있다. 이 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실시한 ‘2021년 걷기 여행 실태조사’ 결과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걷기 여행길 중에서 ‘제주올레’에 이어 2위로 뽑혔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경주 양남면의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에 위치한 1.7km의 길로, 울산 북구 정자동과 경주 양남면을 잇는 14.1km의 해파랑길 10코스의 일부이다. 이 길은 주상절리의 다양한
반구대암각화에 이어 또 하나의 세계적인 유물, 울주천전리각석을 찾아 나섰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소재하며,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와 2.3km 떨어진 대곡천 중상류에 있는 글바위가 그것이다. 울산지역 최초의 국보이자 암각화 유적 최초의 국보를 떨리는 마음으로 마주했다. 동쪽으로 향한 너비 9.5m, 높이 2.7m의 큰 바위가 윗부분이 15도가량 앞으로 기울어져 있어 건너편 높은 바위 절벽 위로 떠오른 해가 바위를 비추는 오전의 짧은 시간에만 바위 밑부분의 가는 선 그림(세선화)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하루 중 대부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포함한 ‘반구천 일원의 암각화’가 ‘한양의 수도성곽’과 함께 문화재청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했다. 문득 8년 전 한번 가보고 잊고 있었던 반구대암각화를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날씨가 맑은 날 오후에 카메라를 챙겨 그곳으로 달려갔다. 오후 4시경이 되어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에 햇빛이 비치자 잘 보이지 않던 그림들이 고배율의 망원경으로 보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600mm 망원렌즈로 암각화가 그려진 암면의 사진을 찍었다. 그 뒤 암각화 건너편 물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걸 보고 불현듯 그 섬에 가고 싶었다. 오래 전 사진 촬영하러 갔을 때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이 떠올랐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어 내 마음은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 가고 있었다. 바로 경남 통영의 남쪽에 있는 소매물도·등대섬이었다.이곳의 큰 매력은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의 바닷길이 하루 두 번씩 열릴 때 드러나는 몽돌밭을 건너 오가는 것이다. 가는 날은 아침 일찍과 늦은 오후에 바다가 열려서 등대섬까지 갔다 오면 뭍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를 탈 수 있는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굳이 물때를 맞춰 날짜
두루미의 낙원, 쿠시로(釧路)!쿠시로는 두루미와 사슴, 여우 등 야생동물이 풍부한 생태도시이다. 겨울이면 두루미(鶴) 사진을 찍기 위해 전 세계의 사진가들이 모여든다. 이곳에서는 여러 장소에서 두루미 중 특히 단정학(丹頂鶴)을 쉽게 볼 수 있다. 두루미는 원래 철새이지만 홋카이도에서는 먹이를 주며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고 또한 쿠시로습원국립공원(釧路湿原國立公園)과 같은 두루미들이 생장하기 좋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겨울이 지나도 시베리아 등지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는 텃새가 되었다. 두루미는 멸종위기동물로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
코로나로 인해 닫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사진가 일행과 함께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올해 2월에 7박 8일 일정으로 사진 여행을 떠났다.홋카이도(北海道)는 일본 열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본슈(本州) 다음으로 큰 섬으로 일본 열도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의 섬 중에서는 아일랜드에 이어 21번째 규모이며 남한의 83%에 해당한다. 전체 인구는 약 530만 명이고 도청 소재지인 삿포로에 약 196만 명이 살고 있다. 또한 전체 면적의 70%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사계절 경관이 뛰어나다. 눈의 고장답게
2005년 APEC정상회의 기념행사의 하나로 시작된 부산불꽃축제가 올해로 17회를 맞아 70여만 명이 모인 가운데 지난 12월 17일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광안리해수욕장과 광안대교의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불꽃쇼는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부산의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2년간 개최되지 않다가 11월 5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이태원 사고 애도기간이라 연기되었다가 올해는 겨울축제로 탄생했다. 그 불꽃 사진을 찍기 위해 길을 나섰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은 필수이다
경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불국사와 석굴암 등 신라의 문화재나 유물뿐 아니라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바로 경주 시내에서 포항으로 가면서 만나게 되는 양동마을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1909년에 개교된 양동초등학교와 100년이 넘은 구멍가게인 ‘양동점방’을 만나게된다. 그리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듯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의 일부분만 보이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골짜기에 종가의 고택과 정자, 서당, 초가들이 숨겨져 있다. 양동마을은 경주(월성) 손씨와 여주(여강) 이씨의 집성촌(集姓村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 계절에 최적의 여행지로는 영남알프스가 아닐까 싶다. 영남알프스는 울주군, 밀양시, 양산시, 청도군, 경주시에 걸쳐 해발 1,000m 이상의 9개의 산군으로 이루어진 수려한 산세와 풍광이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운문산(1,188m), 문복산(1,015m) 등이며, 그 중에서 가지산, 신불산, 재약산(천황산 포함), 운문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