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넝쿨이 3층까지 푸른 잎을 드리운 베란다에 앉았다. 탱글탱글 포도송이가 앙증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검푸른 한 알을 슬쩍 따 입에 넣었다. 새큼한 맛이 입 안 가득 환하게 돌아 나갔다. 화이트 하우스는 올 때마다 이용하는 숙소다. 주인은 젊고 키가 크며 서글서글한 인상에 수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올 때마다 친구라고 부르며 살갑게 맞이해 주며 친절하다. "감마르조바!" 마당에서 손을 흔들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부지런한 그가 미덥다.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뎅그렁뎅그렁 꼭 굴렁쇠를
익숙함에 늘 편안함을 느낀 내가 어떻게 이 먼 낯선 땅 조지아에 왔을까. 그것도 세 번씩이나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다. 세상에 수많은 나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3년을 계속 온다는 것도, 어쩌면 익숙함에 의한 여행이었을까.러시아로부터 독립 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 분쟁사실 이제 와 말하지만, 조지아에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 있다. H 선교사님의 소개로 O 형제와 J 자매를 소개받은 게 4년 전이었다. 그들은 젊은 신혼부부로 아제르바이잔 출신이다. 갑작스럽게 러시아에서 분리 독립된 조지아는 아제르바이잔과 국경 분쟁이 발생했고 급기야 부모님
시간이란 무엇일까. '태초'라는 단어는 이미 시간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누가 시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명확한 답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추상적인 개념일지도 모르지만, 이 우주의 창조를 약 138억 년 전이라고 본다는 설이 있다. 시간은 무한한 존재일지 유한한 존재일지부터 결론을 내리는 일부터 쉽지 않다. 우리가 시간 속에서 살지만 실은 시간의 정의는 참으로 어렵다. 오거스틴(Augustine)은 '시간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이 자명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려 들면 우리가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라고 말
텔라비는 조지아 동부의 도시로 8세기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로 역사에 등장했으며,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카헤티 왕국의 수도로 15세기 통일 조지아 왕국이 분열되기 전까지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다. 토기 항아리에 포도담아 숙성시키는 세계 무형 문화유산여름의 뜨거운 볕이 쏟아지는 거리는 온통 먼지로 뒤덮여 운전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밤 12시경에 도착한 이곳에서는 방조차 쉽게 구할 수 없어 새벽까지 몇 군데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 분에 넘치는 호텔에 들어섰다. 이런 호사를 누림이 왠
고리에서 약 190㎞ 떨어진 바르지아는 조지아의 남부의 아스핀자 근교 에루셸리산의 측면에 동굴을 낸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일몰이 너무나 예쁜 이름도 생소한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낼까. 아니면, 그냥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도시로 가 볼까. 두 갈래에서 마음이 서성거렸다. 늘 선택은 자신의 몫이지만 거리와 시간 등 일정 앞에서 고민했다. 전날 잠을 잘 청하지 못했던 터라 아침에 일어난 내 상태는 그야말로 10라운드 이상 뛴 복싱 선수의 헝클어진 몰골 같았다. 그냥 상대를 끌어안고 더는 버틸 수 없으니 차라리 링 밖의 코치를 향
내 주위 사람 대부분은 조지아 나라를 아는 이가 별로 없다. 가끔 어떤 친구는 자신 있게 안다며 큰소리치지만, 그마저도 커피와 미국의 조지아주(州)를 이야기한다. 그만큼 조지아는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한 나라다. 그러다가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을 이야기하면 모르는 이가 없다. 조지아보다 더 유명한 스탈린, 그가 태어난 나라라고 하면 화들짝 놀란다. 오늘은 그의 고향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독재자 스탈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수도 트빌리시의 아침은 가랑비가 내렸다. 우산도 없이 얇은 우의를 걸치고 배낭을 둘러멨다. 작은 돌이 오
끝 모를 산길 고독의 시간 견디며 걷는 순례자처럼어디쯤에서 불쑥 천상의 화원이 나올 듯한 비포장 길을 몇 시간째 가고 있다. 이러다 나도 모르게 국경을 넘어 체첸공화국으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 두려움마저 생긴다. 양떼를 몰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으니 아직도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손가락을 길게 가리킨다. 아마도 계속 가라는 뜻일 게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그 맑던 하늘은 별안간 안개가 전차군단처럼 몰려와 천지사방을 분간조차 못하게 만든다. 민달팽이가 나뭇잎을 기어오르듯이 속도는 자꾸만 느려진다. 십자가
22년 봄, 처음 조지아에 갔을 때는 아무런 정보나 사전 지식이 없었다. 무작정 걷고 모든 것을 눈에 담아오려는 욕심만이 가득했다. 그때 시내를 거닐다 작은 상점에서 몇 장의 기념품 엽서 앞에서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거기엔 정말 아름다운 자연 속에 집 몇 채가 동그마니 있는 천하절경이었다. 여기가 어딜까? 며칠 후면 이곳을 떠나야하는 일정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주인에게 "사드 바르?"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곧이어 "투세티, 오말로"(Tusheti Omalo)란다. 근처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야겠다고 바
우리의 펜션과 비슷한 호텔인 숙소 마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는다. 오랜만에 가져온 한국 라면은 잊었던 미각을 춤추게 한다. 평화롭고 느긋하다. 젖은 빨래를 마당 가 빨랫줄에 널었다. 바지랑대를 높이 받치자 바람에 금방 흔들린다. 뽀송한 햇살이 위무하는 한가로운 시간이다. 갑자기 돌아가고 싶다, 어린 날의 시간 속으로. 하얀 이불 홑청을 널어 말리던 마당에서 뛰어놀던 시절, 젖은 홑청 사이에 들어가 비누 냄새를 맡으며 무한한 상상으로 나아갔던 아이가 있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 말라가던 하얀 이불의 너른 품이 내내 그리웠다. 내 모습
사람이 행복하려면, 돈이나 명예, 그도 아니면 권력이 필요충분조건일까? 주어진 일상에서 조금 비켜 바람과 하늘을 마주하며 무아지경의 황홀한 시간을 갖는 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만, 나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 이 2000미터의 고도를 넘어가면서 창을 열고 호흡을 가다듬는 일에도 멈출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이 있잖은가.주그디디서 6시간 달려 메스티아로조지아의 서쪽 도시 스바네티주의 주도인 주그디디Zugdidi를 지나 메스티아Mestia로 향한다. 대게의 경우 조지아를 열흘 정도 여행을 온
이메리티(Imeretis) 주의 주도인 쿠타이시, 이곳은 소비에트 연방 붕괴 전에는 조지아의 제2 공업도시로 자동차 공장 등으로 인구 약 14만 명의 큰 도시였다. 특히, 975년부터 1122년까지 조지아 왕국의 수도였을 만큼 유서 또한 깊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서쪽으로 약 221km 거리에 있으며, 공항과 철도가 이어져서 교통 또한 편리하다. 이곳에 있는 바그라티 대성당(Bagrati Cathedral)은 조지아 왕국의 바그라트 3세가 11세기에 지은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곳곳서 들려오는 한국어와 도로 위 한국 자동차
오늘은 수도 트빌리시 근교의 므츠헤타(Mtskheta)로 갔다.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의 두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 다시 흘러가는 삼각지에 있는 작은 도시다. 그러나 규모가 작다고 해서 무시할 수 없는 위용을 조용히 품고 있는 외유내강형이다. 기원전 4세기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비옥한 땅으로, 고대 왕국인 이베리아의 수도였다. 또한 조지아 나라가 태생된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기독교의 초기 유적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즈바리 수도원 등이 있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매일 끊이지 않고 있다.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조지아는 산의 나라로 일컬어질 만큼 끝없는 산맥과 봉우리들이 물결처럼 이어져 있다. 그러나 오늘 이곳은 약 800m의 높이에 있으며 알라자니(Alazani) 대 평원이 바다처럼 펼쳐진 넓고 잔잔한 곳으로 사랑의 도시라고 일컫는 시그나기(Signagi)다. 최동단의 카케티 지역에 있으며, 24시간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도록 관공서도 문을 열어 놓는다니 정말 대단한 배려 아닌가. 도시라고 해봐야 고작 길 하나를 가운데 두고 오밀조밀 집들이 이어진 게 전부지만 꼭 우리나라의 경주와도 같이 고즈넉하고 품이 너른 고도(古都)다. 하나라도 더
'쳇바퀴 같은 일상 하루쯤 벗어 놓고 / 가랑잎 묻힌 골을 한나절 올라가면 / 억새꽃 구름을 흩는 하늘 아래 산성리 // 산보다 가난이 싫어 모두들 떠났는가 / 빛바랜 분교 한 채 우두커니 남은 고원 유자 빛 물든 노을은 저렇게도 고운데 // 방 한 칸 부엌 한 칸 그만하면 넉넉하리 / 버려진 산밭에는 더덕 씨나 뿌려두고 / 너와 나 이름 없이 묻혀 살고지고 한세상'(조동화 - 산성리에서)하행길 작년에 돌아섰던 험한 길로 다시 들어서다 늘 외우던 시다. 경주에서 산내로 가다가 산 어디쯤에서 우편으로 올라가면 있는 산성리, 학창 시절
카즈벡산 등반거대한 바위산, 마치 달마대사처럼 세상을 다 초월한 듯 웃고 있는 모습이다. 국경을 스스로 자처하며 우뚝 솟은 고봉준령에 가슴이 확 트인다. 산 입구에 핀 자잘한 봄꽃 향기가 운무처럼 일렁인다. 저 건너편 산정은 눈부신 고립처럼 설산의 빙하로 우뚝 솟았다. 변화무쌍한 세상의 춘하추동을 부러워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만의 곧은 성정을 스스로 지키며 가는 성자 같다. 아름다운 얼굴 다 보여주지 않는 면사포 쓴 신부의 자태나는 지금 저 산을 오르려 한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하여 마치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읽는 듯하다.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이 고요를 찢는 카즈베기(Kazbegi). 수천 미터의 산에 둘려있어서인지 어둠은 더 짙다. 종일 예까지 달려오느라 피곤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창을 여니 적벽의 눈바람이 들이치는지 서늘하다. 의자를 바투 당겨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고 굵직한 첼로 음악을 켠 채 모로 누웠다. 조금 전 데스크에서 만난 리사(Lisa)를 생각했다. 체크인(check-in) 할 때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했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오뚝한 콧날을 더 가까이하며 자랑했다. "아줌마" "아버지" "언니", 내가 웃자 한국을
가뜩이나 좁은 도로를 달리느라 초긴장의 연속인데 길옆으로 주차된 대형 트럭은 끝이 없다. 모두 러시아로 들어가는 물류 차량이란다. 몇 날을 참고 기다려야 국경선을 넘을지 장담할 수 없기에 운전자들은 여유롭게 풀숲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도 가도 이어진 차량 행렬이다. 이 모든 차량은 러시아와 무역을 하려고 이웃한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튀르키예, 타지키스탄 등에서 왔단다. 곡예 운전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이었다. 산 중턱에 이르렀는데 고산으로 펼쳐진 푸르디푸른 초원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로는 눈
공항에서 달러를 조지아 화폐인 라리(Lari)로 환전을 했다. 우리 돈 약 460원 정도가 1라리로 보면 비슷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환율이 작년보다 많이 올랐다. 우리나라에 있는 동안 지난해에 만났던 택시기사인 '짜카리아'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잘 지내느냐?" "너는 오면 돈을 안 쓸 거다" "우리 집에서 원하는 만큼 지내라" 등 짧은 안부였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좋은 친구였다. 비행기를 예매도 안 했는데 몇 달 전부터 계속 언제 올 거냐며 어린애처럼 졸라댔다. "곧 갈게" 답을 보내고부
조지아,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조그마한 땅!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흑해를 품고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인정이 넘치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어린애가 인형을 안고 자듯이 날마다 조지아를 품에 안고 잤다. 그것도 몇 달을 끙끙 앓듯이 뒤척이다 끝내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무작정 집을 떠났다. 그곳 5월은 우기,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를 갖고 내 발걸음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 마치 첫사랑을 만나러 가듯 설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되었고 즐거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