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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장날에 새 도낏자루를 친히 만들어서 임신부 몰래 상 아래 두면 여태(여자 태아)가 남태(남자 태아)로 바뀐다"


 조선시대 가정백과사전 '규합총서'엔 뱃속 여자 아이를 남자 아이로 바꿔준다는 비법이 실려 있다. '규합총서'는 이런 비법을 소개하면서 의심스러운 사람은 "암탉이 품은 알을 가지고 시험해보라"고 했다. 또 원추리 꽃술을 왼쪽 머리에 꽂거나 활시위를 100일 동안 허리에 두르고 있어도 뱃속의 여자 아이를 남자 아이로 바꿀 수 있다면서 "효험을 본 사람이 1,000만 명이나 된다"고 전했다.


 책 속 마지막 비법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임신 3개월이 안 된 임신부에게 삼경(밤 11시-새벽 1시)에 남편의 관(冠)과 옷을 입고 남몰래 집 안에 있는 우물가에 가서 왼쪽으로 세 번 돌고 우물에 그림자를 비추고 돌아오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 그러면서 딸만 열을 낳은 어떤 부인이 이 방법을 쓴 뒤 아들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지금 보면 황당무계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남아선호가 유별난 조선시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신간 <실용서로 읽는 조선>은 실용서를 통해 조선 사람들의 내밀한 일상 풍경을 들여다본 책이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정긍식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전용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호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한명주 경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책 하면 사서삼경 등 유학 책이 떠오르지만 유학 서적 외에 일상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실용서가 편찬됐다. 임신과 태교, 출산에 대한 정보를 담은 '규합총서'와 '태교신기'를 비롯해 관료들이 활용한 행정편람서 '고사촬요', '사송유취'와 같은 법서, 요리 정보를 수록한 '음식디미방', 당시 유행한 편지 쓰는 법을 소개한 '간식유편'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채로웠다. '토정비결', '동의보감', 한글 교재 '훈몽자회'도 대표적 실용서다. 삶의 여유를 누리고 감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실용서도 있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은 꽃과 나무를 키우는 방법과 재미를 소개하고 가야금 악보 '졸장만록', 거문고 악보 '합자보'는 조선의 섬세한 선율을 담았다.


 '태교신기'에는 여성은 물론 장차 아버지가 될 남성의 태교도 상세히 소개한다. "스승의 10년 가르침이 어미가 잉태하여 열 달 기름만 같지 못하고 어미가 열 달 기름이 아비 하루 낳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경하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는 "임신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태교가 시작되며 그때 아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잠자리에서나 평시에나 아비 되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태아의 자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채로운 실용서를 통해 조선 사람들이 살아간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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