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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못하는 학자는 교수 임용에서 탈락한다. 교수가 되려면 국제학술지에 영어논문을 게재해야 하고, 교수가 된 뒤에도 영어논문을 써야만 재임용이 된다. 영어 강의도 기본이다.
 이런 현실에서 학자가 우리말로 학문을 해야 한다고 외치기는 쉽지 않다.


 오랫동안 '우리말로 학문하기' 운동에 힘써 온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가 '우리말은 병신말입니까'에서 한국 대학들이 매년 몸살 앓듯 겪는 언론사 대학평가와 '영어로 학문하기'의 문제점을 날카롭고 집요하게 파헤쳤다.
 구 교수는 정부, 언론사, 대학 경영자 등 한국의 사회적 권력자들이 영어화 또는 국제화에 대한 자신들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우리말을 마구잡이 '병신 말'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특히 다른 나라 언론사의 대학평가 지표에는 한국 언론사들이 애지중지 떠받드는 '국제 저널 평가'와 '국제화 평가'라는 평가 요소가 빠져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 언론사들이 외국 언론사들의 대학평가 방식을 따르는 점을 고려하면 이 두 요소는 우리 언론사들의 창작품인 셈인데, 이는 곧 '우리말을 병신으로 만드는 세력'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모든 학문어의 영어화는 학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학문어 선택의 자유를 가로막고 학문의 자유를 짓밟는 폭력이며, 나아가 민족의 정체성을 허물어 버린다는 것이다.
 구 교수가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대학교수 임용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말과 글에 대한 억압이 곧 사람과 삶에 대한 통제임을 강조하고, '우리말'에 대한 뜻매김을 통해 우리말이 정말로 '병신 말'인지 아닌지 따져 밝힌다.


 우리의 말과 글을 비정상으로 내모는 영어몰입 교육과 영어로 강의하기, 영어로 논문 쓰기의 실태와 문제점을 논하고 개선 방향도 내놓는다. 또 정부와 신문사들의 대학평가의 국제화 지표가 왜 옳지 않은지 밝히고, 우리말을 학문어로 키우기 위한 길도 제시한다.
 저자는 우리말과 글을 '병신'으로 만드는 주범으로 대학평가를 꼽는다.
 현재 대학평가는 대학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사회적 권력이 됐고, 평가 내용 가운데 국제화 항목이 한국의 모든 대학을 영어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학문의 영어화는 단순히 정체성 위기에 그치지 않고 학문어에 대한 제한과 억압으로 학문의 자유마저 크게 움츠러들게 했다고 진단한다.
 구 교수는 학문의 방향이 창조성과 융합 쪽으로 잡혀야 하고 이를 위해선 모국어로 학문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수학이라는 수단을 잃으면 물리학이 길을 잃듯, 우리말과 글이 사라지면 '우리 학문'의 길도 끊긴다면서 학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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