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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천년의 숨결이 서린 경주 남산. 가는 곳마다 수많은 전설과 불상 가득한 거대한 노천박물관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은 서·남산주차장에서 바라본 냉골과 금오봉.


경주 남산(南山)을 흔히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한다. 이 산은 신라천년을 통해 가장 신성시되었든 산이며 수많은 전설과 불상들이 산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유물과 유적들도 많이 있다. 불교 관련 유적뿐만 아니라 왕릉, 무덤, 궁궐터들이 남아있어 신라 문화의 집결체라고도 할 수 있다. '남산에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 할 수 없다'는 말처럼 남산은 신라인들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라벌(경주)은 불교의 성지로 불린다. 그래서인지 골짜기마다 불상이며 석탑이 산재해 있어 일명 노천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로 이뤄진 남산은 2000년 12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100대명산의 반열에 들어있는 산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은 경주 서·남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삼릉에서 출발하여 냉골을 따라 금오산(봉)으로 올라가 본다. 삼릉계곡을 '냉골'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일 년 내내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로 가장 많은 불상 조각이 있는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40여개 계곡과 산줄기로 이뤄진 금오봉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한국 100대명산
산행 곳곳 마주하는 신비로운 불상 감탄


▲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나란히 묻혀 있는 삼릉(三陵).
# 경주 서·남산자락 삼릉에서 출발
산행 초입부터 그윽한 솔향기가 코끝에 맴돌고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낯선 이방인을 맞이하러온 옛 신라인의 영혼처럼 느껴진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경주배동 725번지 삼릉(三陵)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3개의 무덤이 있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나란히 묻혀 있는 곳이다. 무덤이 끝나는 지점에서 삼릉주차장-0.3㎞, 삼불사-550m, 상선암-1.3㎞, 금오봉-2.3㎞이다.  소나무 숲 길을 따라 오르면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다. 숲길을 따라 400여m 오르다보면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바위면에 목과 팔, 무릎도 잘려나가고 없는 불상을 만난다. 언뜻 보면 좌불이라 하기엔 너무 초라한 모습이다. 머리(얼굴)가 없는 상태에서 당시 이 좌불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옷 주름만 선명하게 남아 있는 '냉골 석조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1964년 8월 방학을 맞은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좌불은 이곳에서 30여m쯤 떨어진 계곡 아래 묻혀있던 것을 파내어 이 자리에 옮겨놓았다고 한다. 높이가 1.6m, 무릎넓이 1.56m로 당시 큰 좌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얼굴과 손은 없지만 어깨가 넓고 당당하고 위엄이 있었을 것 같은 좌불 상(像)을 떠올려보며 발걸음을 옮긴다. 무슨 이유로 불상이 이렇듯 파괴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불상을 파괴한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불두(머리)가 없는 불상에서 북쪽으로 50여m쯤 왼쪽으로 올라가다가 산등성이를 쳐다보면 마치 돌기둥처럼 생긴 바위들 사이에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보살상의 높이는 1.5m정도 보이고, 보살상과 일치되어 있는 뒤 바위(광배)는 높이가 3m정도 되어 보인다. 관음보살은 비스듬히 높게 솟아있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 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조각상인 것 같기도 하다.


▲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다시 왔던 길을 뒤돌아 나와 첫 번째 개울을 건넌다. 개울을 건너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골짜기 왼쪽 20여m지점(개울을 건넘)에 자리 잡은 널따란 바위에 선각으로 새겨져 있는 불상이 있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이다.
 선각이라는 것은 조각칼로 선을 그어 부처의 모습을 그렸다는 의미다. 경주지역 일원에서 음각만으로 되어있는 불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선각육존불상은 뛰어난 신라인들의 정교한 미술솜씨를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선각육존불은 보는 사람이 바위를 보고 섰을 때 오른쪽 바위면은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새겨져 있고, 왼쪽 바위면은 아미타 삼존불을 새겨 현실과 내생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당시 신라인들은 바위를 다루는 솜씨가 마치 화선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두 개의 큰 바위면에 여섯 부처를 살아 있는 것처럼 그렸다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조각솜씨에 감탄을 하면서 주 등산로로 돌아 나와 냉골 상류를 따라 올라가본다.
 세번째 개울을 건너고 조금 뒤 큰 냉골과 작은 냉골이 갈라지는 갈림길 부근에 도착한다. 금오봉-1.45km, 삼릉주차장-1.15km, 선각여래좌상-180m, 상선암-0.45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바로 상선암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이다. 왼쪽 능선 길을 따른다. 능선 길을 따라 100여m쯤 올라가다 보면 능선에서 남쪽을 향하고 있는 보물 제666호인 석조여래좌상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 다양한 불상보며 오르는 재미
석조여래상은 순백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보호 둘레막 안에 있다. 머리 부분과 가슴은 맑은 날이면 밝은 광채를 내뿜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하게 하며, 연화대석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얼굴이 깨어져 보수한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보수한 탓에 얼굴부분이 본래부분의 석질과 맞지 않아 마스크를 하고 있는 불상의 모습 같기도 하여 '마스크 불상'으로 통하기도 한다.
 얼굴이 깨어져서 반쯤 남아있는 것을 1970년 이 전에 민간인이 깨어진 얼굴을 시멘트로 보수하면서 얼굴 모습이 흉하게 되어 이때부터 사람들은 '마스크불상'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본래의 모습은 얼굴의 반으로 윗부분만 남았고 가느스름한 눈을 통해 자비로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목에는 세 개의 주름(삼도)이 있고 옷 주름은 가늘고 몸체는 풍만해 보인다. 불상 뒤편으로 기도를 올렸던 사람들의 기도처 같기도 한 조그마한 동굴도 보인다.
 당시 석조여래좌상의 본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비로운 모습을 떠올려 보면서 다시 왼쪽능선(기도처 같기도 한 조그마한 동굴)길을 따라 80여m 들어가면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159호)을 만날 수 있다.(선각 육존불에서 바위를 타고 위로 500m정도 숲 속 길을 따라 올라가도 선각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은 큰 바위면에 높이와 너비가 모두 10여m쯤 되는 절벽의 중앙에 자연적으로 수평으로 금이간 바위에 아래쪽을 대좌로 삼고 위쪽에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현지 안내표지판 설명에 의하면 그림의 높이는 1.2m이고 신라말, 고려초 작품으로 보고 있다. 몸체는 선각을 하고 얼굴만은 돋음 새김을 하고 있다. 코는 길고 입술은 두껍고 커서 과히 점잖은 얼굴이라 할 수 없으나 위엄이 있어 보였다. 조각 수법이 세련되지 못하고 특히 다리 부분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 미완성 작품으로 여겨진다.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의 모습을 뒤로하고 아래로 내려가면 올라올 때 보았던 남산냉골 선각육존상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등로이고 상선암으로 가려면 조금 전 올라왔던 길을 다시 돌아나와야 한다. 갔던 길을 뒤돌아 나오면서 선각여래좌상은 무슨 연유에서 얼굴(상체)아래 부분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는지 자꾸만 궁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약 7~8분 뒤 상선암으로 올라가는 본 등산로와 합류한다. 이곳에서 금오봉-1.35㎞, 상선암-0.35㎞, 삼릉주차장-1.25㎞, 삼릉계곡석조여래좌상-40m이다. 길은 다시 약간의 경사길이 이어진다. 길은 계곡을 좌우로 번갈아가면서 이어지고 한숨을 고른 뒤 나무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금오산 상선암(上仙岩)에 도착한다. 다음주에 계속
 산악인·중앙농협 달삼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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