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대통령, 그리고 탄핵
촛불과 대통령, 그리고 탄핵
  • 울산신문
  • 승인 2016.12.13 19:47
  • 기사입력 2016.12.1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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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두 칼럼] 시인·소설가
   
시인·소설가

'울어라 열풍아' 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으로 국민가수 이미자가 부른 노래다. 이 노래의 가사를 읊조리다 보면 탄핵정국과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박근혜대통령이 여성이 아닌 털털한 성격의 남자였다면 깡소주 한병을 비우고 불렀으면 딱 들어맞는 노래일텐데 하는 생각이지만 그건 나의 생각일 뿐이고 장본인은 그저 담담하게 있을 것이라 했다.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 못하고 가는 님을 웃음으로 보내는 마음"

나라와 결혼한 그분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마다하는데 어찌 소리 내어 울 것인가? 그러니 기가 막혀도 웃음으로라도 이별할 수밖에… 그  누가  알아주랴. 기막힌 내 마음을 하며 속 타는 가슴을 두들겨라도 보아야 할 텐데 그러지도 못할 형편이 아닌가? 구절구절이 탄핵을 당한 참담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절절이 가슴에 한이 되는 소리다. 아마 2절의 내 가슴에 이 상처를 그 누구가 달래주랴 하면 그 한은 더 깊어 질 것 이다. 그러잖아도 피눈물 난다는 말은 이제 알겠다는 그 분이기에 필자의 글도 각설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조선이 망한 이유를 당파싸움과 붕당정치 때문이라고 인식해 버린다. 그래서 오늘날의 정당과 정당이 정면으로 맞서  싸우거나 또 같은 정당에서 벌이는 계파 싸움도 그것과 같이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왕조시대의 특권계층을 이룬 벼슬아치들이 기득권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고 여기에 새로 기득권을 차지하려드는 과정에서 피비린내 나게 싸웠던 그때와 민주주의 시대인 지금의 정치판 싸움은 근본부터가 다른 것 이다.

조선의 역사가 수치스럽게 보인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우리가 이어 받았고 그 혼은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생생히 살아있다.

그러기에 역사는 반면교사가 된다.  잘못한 일도 잘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교사가 된다는 것이다. 나약한 국력으로 인해서 오욕으로 점철된 근대사는 이제 하나의 야사로 묻어버리고 새로이 빛나는 역사를 창조해야하는 책무가 우리의 숙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가 이럴진데 그보다 앞선 고려의 역사는 어떠했던가? 고려 왕조 실록은 임진왜란 때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고려에 관한 모든 서적과 그 밖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에 가까운 고려왕조시대의 역사를 복원해 놓았다. 고려왕조시대를 돌아보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과 흡사 닮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시대는 중국대륙에서 수십 개 의 나라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강대국이 요동치는 틈바구니에서 참으로 고달픈  5백년을 버티면서 살아남은 선조 고려인들의 강인함과 실리, 그리고 대의명분을 함께 취했던 현실감각이야 말로 격동의 세계사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지혜를 배우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이 선조들의 끈기와 의지 그리고 지혜를 배우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헌정사상 두 차례나 대통령을 탄핵시킨 우리다.

2백만의 촛불이 탄핵소추안을 가결 시켰다고 해도 그 2백만 보다 훨씬 많은 국민이 있고 그들이 침묵하고 관망하면서 광장으로 나가지 않았어도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결코 탄핵은 종결된 게 아니다. 그것은 법칙을 따르고 그 법기의 절차대로 결과를 준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탄핵을 시작할 때부터 즉각 퇴진을 주장하는 대선후보가 있었지만 이제는 촛불로 결판을 내겠다며 연일 거리를 메우고 광장정치로 온 나라가 일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발단이야 대통령 때문이라 하더라도 법절차에 의한 순서에 따라 모든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다수의 국민들은 하루 속히 안정을 되찾기를 바라고 있다. 아무리 보기 좋은 꽃이라도 자주 보면 싫증이 난다. 거룩한 촛불의 승리라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국정농단 사례가 생겨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세계가 놀란 우리의 촛불이 민족사에서 영원히 기억 되게 하는 의미에서도 법치로 촛불의 의미는 더욱 거룩하게 해야 한다.

국민도 더 이상 민주주의에 우둔한 시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대통령은 자괴감이 든다는 말을 두 번 썼다. 한번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였고 또 한번은 "이러려고 최순실에게 밥해 먹였나?" 였다. 그런데 정작 궁금하게 여기는 말 한마디를 이제까지 듣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도 최태민이 주장하던 사이비 종교의 이론인 우주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믿고 있는지? 거룩한 공교회는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그것으로 사익을 취하면서 온갖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집단을 이단으로 경계한다.

아직도 영혼을 거기에 맡기고 있는지? 분명한 대답을 듣고 싶다. 하긴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사에 오점을 남긴 3선 개헌을 무리하게 밀어 붙이면서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을 불러 앉히고 자네가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을 무마하고 나를 좀 도와주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 지고 있으니 오늘의 불행은 아버지로부터 씨앗을 받았으니 최순실을 이제 상전으로 모시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아버지도 딸도 불행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그로인해 갖게 되는 국민의 자괴감을 달래주기 바란다. 촛불에도 말한다. 더 이상 아니라고 우기지 못하고 더 이상 마녀사냥이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길은 헌법 재판소의 결정을 성숙한 국민의식으로 차분하게 기다리는 일밖에 없다.하루속히 우리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 맡은 일에 열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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