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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나서는 이들의 공통점은 '내가 최고의 적임자'라는 자만이다. 준비된 사람이거나 실력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유권자들이 잠시만 틈을 내 두 눈을 마주보면 대부분 금방 들통이 난다. 잘난 이들이 시장이 되고 구청장이 되고 시의원이 되겠다는 선거판은 그래서 요란하다. 포장하고 꾸며야 들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앞으로 70여 일 남짓 동안 우리는 최고 적임자라는 이들이 외치는 요란한 미래비전을 들으면서 보내야 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와 자신이 뿌리 내린 지역을 위해 그동안의 경륜을 현실에 적용해 보겠다고 나선 이들도 있다. 그 밑바탕에 지방선거의 참 뜻과 선출직의 무게감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역을 위해 한 몸 희생하겠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인사들도 있다.

울산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직면해 있다.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수출전선의 선봉으로 회자되던 울산의 수식어는 이제  시효가 지났다. 울산은 지난 반세기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선봉에 섰던 임무는 여기까지다. 이제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의 내부적인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물론 그동안의 투자로 시민들을 위한 기반시설은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정주의식이 높아지고 지역경제의 체질도 미래를 바라보는 눈높이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긍정적인 지표들이다. 문화와 의식 수준도 한층 나아지는 추세다. 문제는 의식이다. 눈에 보이는 풍요나 가치는 탁월할 만큼 향상됐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글쎄다.

부자도시답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의 성과는 높아졌지만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의 문제는 여전히 손댈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번 선거의 이슈 선점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울산의 단체장으로 나선 이들이 가져야 할 첫 번째 자격은 울산의 오늘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적표다. 반세기 전 대한민국 근대화의 선봉에 선 울산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끈 주역이다. 그 주인공의 땅에 살던 이들은 '조국 근대화'의 기치아래 모여든 팔도의 젊은이들과 한식구가 됐다. 그들이 쏟아낸 땀과 열정이 울산을 대한민국 근대화의 심장으로 거듭나게 할 것을 믿었기에 기꺼이 천혜의 해안과 옥토, 대대로 삶을 일구던 고향 땅을 내놓았다. 산하가 뒤집히고 추억과 역사가 토막 나는 현장도 묵묵히 견딜 수 있었다. 그 희생의 역사 위에 선 도시가 울산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울산을 바라보는 중앙의 시각을 관찰하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해마다 힘들게 따오는 국가예산을 마치 큰 시혜를 베풀기나 하듯 던져주는 정부가 과연 반세기 전 울산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시각이 필요하다. 검은 연기를 뒤덮어 수출의 달콤한 달러로 바꿨던 기업들,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산하를 갈아엎고 육중한 구조물을 세웠던 기업들에게 울산은 어떤 의미인가를 찬찬히 살펴보는 시선의 이동도 필요하다. 공장이 있는 울산은 그저 재화를 벌어들이는 보물창고 정도로 여기고 가끔 다녀가는 출장지 정도에 불과한 기업주에게 울산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왜 울산에 본사를 유치해야 하고 울산을 위한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투자를 주문해야 하는지를 고민해 본 사람이라야 선거에 나설 자격이 있다. 도로를 공장용지로 바꿔주고 농토를 자신들의 부지로 전용해주면 화색이 도는 것이 기업이다. 그런 이해관계가 대차대조표의 무게중심을 바꿔놓으면 기부라는 이름으로 나무를 심고 꽃도 가꾼다. 그런 정부, 그런 기업과 정색을 하고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선거에 나설 자격이 있는 이다.

선거판은 뻘판이다. 한발 잘못 디디면 흙탕물이 튀고 어어 하는 순간 늪지로 빠져드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선거는 온몸을 던지고 자신을 벌거숭이로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선거철만 되면 새로운 인물들이 새로운 바람을 연출한다. 그러나 정말 새로운 인물인지는 글쎄요다. 새로운 인물이라면 선거판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모든 질서를 새롭게 바꿔야 하지만 우리 선거문화에 새로움이란 구호나 선전 문구에 불과하다는 푸념은 일상화 되버린 느낌이다. 문제는 새로움을 가장한 인사들이 변화를 외치는 점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고 '바람선거'를 선거판의 롤모델로 삼는 인물이라면 차라리 간절곶 해안에서 동해 맞바람이나 맞을 일이다. 골수부터 새롭게 이식하고 그 새로움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면 문제는 다르다. 하지만 활자로 적어보는 새로움, 자신도 겸연쩍은 새로움이라면 이번 선거에는 나서지 말아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부 기자들이 바빠졌다. 시청 프레스센터에는 출마를 외치는 이들이 줄을 섰고 매일같이 온갖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절묘하게 출마시기에 맞춰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들, 황당하기까지 한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인물들, 한술 더해 만나는 사람마다 '소원을 말해봐'라고 노래하는 후보들도 무수하다. 미안하지만 그런 인물들에 대해 유권자들은 이미 지난 겨울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어디 겨울 뿐인가. 지역의 대표가 되겠다고 말쑥하게 꽃단장 한 이들이 여름 한철 소나기를 어떻게 피해갔는지, 가을 바람에 어떤 나무들과 마주했는지 이미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다. 행여 모를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면 지금 선거판을 떠나는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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