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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를 먹은 뒤 밥 하나를 볶아 달라고 주문했는데 아르바이트생 청년은 밥을 수북이 가져와 철판에 넣고 볶기 시작한다. 함께 앉은 지인이 청년을 보며 말한다. "우리 많이 먹으라고 밥을 넉넉하게 가져왔죠?" "네." 아르바이트를 잘 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어서일까. 아직 얼굴에 무표정 외엔 표정이 담기지 않은 청년이 얼른 대답한다. 특별하게 반기거나 표현하지는 않지만 이 식당에 두 번째 온 우리한테 잘해 주고 싶어 하는 청년의 마음을 은연중 느끼고 있었다. 그 마음이 밥을 한 공기보다 많이 가져온 것이리라. 한창때 젊은 사람의 양으로 가늠해 보면 식당 밥 한 공기는 아무래도 적게 느껴진 것 같다.

밥에다 채소와 김치, 김 가루를 넣고 열심히 볶는다. 청년은 닭갈비를 볶아 줄 때도 양손에 든 나무 주걱질이 재발랐다.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나 표정이 많이 어색한 것으로 보아 신입 아르바이트생 같다. 닭갈비 볶는 일은 가게 사장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그 일을 잘 해내기 위해 혼자 연습했으리라. 실전에 대비하여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으면 닭갈비를 그토록 잘 볶았을까.
며칠 전 갔던 생선구이식당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여학생이 있었다. 방학을 이용해 점심시간에 일을 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는 학생은 식당서빙 하는 일이 서툴렀다. 잘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일의 앞뒤가 헷갈리고 가닥이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맡은 일에 충실하기 위해 손님들의 식탁을 열심히 살폈나 보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 얼른 다가와서 말했다. "생선 포장해 드릴까요?" 먹고 남은 고등어구이에 대해 하는 말이었다. 우렁이를 넣은 된장찌개가 시원한 맛이어서 국물을 자꾸 떠먹다 보니 두부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걸 본 학생이 또 물어왔다. "찌개도 포장해야죠?" 남편과 나는 아르바이트생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평생 많은 식당을 다녔지만 먹다 남긴 음식을 두고 종업원이 먼저 포장해 주겠다고 나선 데는 처음이었다. 생선 한 마리 중 반쯤 남은 것은 마땅히 포장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다 먹다 남은 찌개까지. 당연하다는 듯 방긋 웃는 학생의 생각이 참신하게까지 여겨져 고맙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뜯어 먹다 남겨진 고등어구이를 집에 가져와선 안 먹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꺼이 들고 왔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고작 남긴 음식을 구구하게 가져간다며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남은 음식 포장해 달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고급음식이 남았을 때는 서로 가져가려는 의중을 은근하면서도 강하게 내비치곤 한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며 습성 된 사고이겠지만 구차스럽다.
아들이 요로결석으로 서울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자식을 보며 애가 탄 나머지 나는 거짓말처럼 입맛이 떨어졌다. 유명하고 큰 병원이어선지 그곳 지하에 깔끔한 일반 식당이 있었지만 음식을 사먹으러 갈 의욕도 식욕도 없었다. 하지만 자식을 간호할 힘을 내야 하므로 끼니를 거를 수는 없었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서 사온 김밥이지만 환자보호자 휴게실에서, 전자레인지에 컵라면을 돌려 라면국물과 함께 억지로 욱여넣듯 먹었다. 그렇게 한 끼를 때우는 일이 제일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향해 보호자 휴게실을 관리하는 중년의 여자 직원이 노골적으로 괄시하는 얼굴로 말했다. 라면이 질리지 않느냐고. 김밥을 먹기 위해 라면국물을 마시는데 그나마 김밥은 그녀가 내뱉는 말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김밥도 라면과 같이 거기에서 거기인 하찮은 먹거리라는 표출을 그렇게 했다. 라면이나 먹는 보호자이니 무시해도 되겠다는 심중이 그녀의 전신에서 뻗어 나왔다. 같잖아서 그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환자보호자 휴게실을 관리하는 직원이 환자보호자를 함부로 얕잡아 보아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그래서 사람들은 없어도 있는 척하고 허세를 부리는구나, 절감했다.

아직 대학생 같은 앳된 청년은 바르고 성실해 보인다. 생선구이집의 총명하고 예쁘던 학생 모습이 청년과 겹쳐지며 떠오른다. 스물 초반의 젊은 청춘들이 저토록 올곧고 선량하다. 식당에서 먹다 남긴 음식이 별것 아닌 것이어도,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싸 가서 다음 끼니의 식탁에 놓는다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젊은 그들이 군더더기 없고 선명해서 좋다. 더구나 우리 세대를 먹여 살릴 세대이니 더욱 소중하다. 

그런 그들이 있어 우리 미래가 빛나는 걸음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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