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단상
책에 대한 단상
  • 울산신문
  • 2019.01.3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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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집안에 책들이 쌓여간다. 특히 지난 한 해의 끝자락과 새해에 들어서면서 책 더미 속에서 지냈다. 가끔은 복 받은 생활이라 여긴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던가? 배가 부르다 못해 차고 넘친다. 

세상에 책 선물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책이 내 손에 오는 속도와 읽어내는 속도가 비례하지 못하니 문제다. 그러니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이 쌓이게 마련이다. 반가운 지인들의 책이 있는가 하면, 이름만 들었던 작가들도 있다. 개중에는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이름들이 보내온 책들도 제법 많다. 너무 많은 책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부터 책이 오면 반가운 이면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 편, 한 편의 원고를 모아 책을 만들기까지의 수고를 알기 때문이다. 행여 그분들이 보내온 소중한 옥동자를 홀대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서다. 작품 하나에 대한 산고의 고통은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다르지 않다. 괜찮은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늘 글밭 언저리를 맴돌기만 하는 나의 염치다. 더불어 작가와 쌓여가는 책에 대한 예의다. 

나의 작품들과도 무관하지 않아서일까, 밀쳐둔 책을 보면 연민이 간다. 그래서 나 또한 부단히 노력하는데도 발표를 하고나면 자신도 모르게 손이 오그라들게 된다. 참 못할 짓이다. 밀쳐난 책들을 다시 끌어와 보듬는다. 표지를 보면서 작가에게 미안함이 생긴다. 

다시 펼쳐 든 책에서 가끔은 보석 같은 작품이 발견될 때도 있다. 그 한편의 응축이 책 전체의 느슨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영향력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럴 때의 놀라움은 나의 시건방짐과 무지, 자만심 같은 것이 강한 몰매를 맞는 순간이다. 그 강한 충격이 회초리로 다가와 나를 다시 가르친다.

내게 온 반가운 책들과 다시 마주한다. 순서 없이 이름들을 떠올리며 포장을 뜯는다. 몇 줄, 몇 편 읽어보면 대체로 글의 흐름이나 작품의 성실도와 난이도가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한 작품을 놓고 미루어 짐작하는 나만의 원칙이나 기준이 생겨버렸다. 오만함의 극치다. 

첫 번째 재미가 없거나 두서없는 글은 분류의 기준에서 일단은 사이드로 밀려나게 된다. 다음에 뒀다가 읽을까 생각해서 챙겨두었던 책들이 결국엔 책정리 목록에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내 작품에 대한 민망함, 부끄러움이 물밀 듯 밀려온다. 나의 책을 건네고 제법 시간이 흘러서 지인들을 만나면 책을 가볍게라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책을 받고도 책 안 보냈다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 다시 확인하고는 미안하다고는 하나 조금은 씁쓸한 경우도 있다. 받아서 쌓아두기만 했다는 뜻이다. 나의 민낯도 들어있다. 보내거나 때론 만나서 건네진 책이 저런 짐스러운 것은 아닌가. 그들의 책장 귀퉁이에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사이드로 밀려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수시로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독서 습관은 좀 얄궂다. 질서나 형식도 없이 한 번에 여러 권을 이곳저곳에 펼쳐두고 읽는다. 어떤 책은 꼼꼼하게 안 읽어도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오래도록 조우하고 싶은 책도 있다. 그것이 시집이라면 몇 편씩 나눠서 읽고 다시 보기도 한다. 수필집이어도 다르지 않다. 요즘 수필은 대체적으로 길지 않아 몇 편을 읽어도 잘 쓴 작품은 지루하지 않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단편을 나눠 읽어도 되지만 장편을 끊어 읽기가 모호해 그냥 단숨에 다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책을 읽고 느끼는 독서의 배부름은 음식을 먹고 느끼는 배부름과 다른 것 같다. 음식의 만족감과 다르고 사람의 만남보다 더 오래 간다. 독서를 하고 난 다음에 오는 울림으로 놓고 있던 펜을 들 수도 있고 삶의 가치관이 물처럼 이동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책은 사람을 바꾼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 책의 작가와 교감하듯  한 권을 끝낼 때쯤에는 오랜 여운으로 마음까지 정화되기도 한다.  

책들을 다시 정리한다. 나름의 분류질서를 깨고 책을 섞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았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는 말처럼 어느 책에 귀한 보석이 들었는지 읽지 않고 어찌 알겠는가. 내 이름자 고이 적어서 보내온 고마운 마음들이다. 그 작품이 나의 문학성과 다르다 해도 대수겠는가. 조금 산만하면 또 어떤가, 보내온 마음과 그에 담겨진 노고를 생각해야겠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삶이나 알지 못했던 세계를 새롭게 경험하는 일이다. 익숙해진 내 연안에 정박한 배를 드넓은 바다로 이끄는 동력은 바로 좋은 책을 읽는 습관에서 얻는 것이리라. 각기 다른 이름, 다른 얼굴로 나를 찾아오는 책들을 예전보다 더 귀이 여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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