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 가고 싶다
꽃밭에 가고 싶다
  • 울산신문
  • 2019.05.2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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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제 수필가

박 할머니는 작년 늦가을에 스물아홉 손녀를 잃었다. 다섯 살에 뇌종양을 앓았던 후유증으로 말을 잃고 옴짝달싹 못한 채 이십여 년 넘게 누워 지낸 손녀였다. 박 할머니는 집안일과 손녀를 챙겨 먹이는 일에 혼신을 다하다 여든이 되었다. 

그 옛날 고등학교까지 나온 데다 꿈이 피아니스트였던 박 할머니는 집안일을 하다가도 손녀를 바라보며 피아노를 치곤했다. 동요도 퐁당퐁당 퍼 올리고 찬송으로 코를 훌쩍이기도 했다. 게다가 품 넓고 웃음까지 많은 박 할머니의 집을 나는 자주 드나들며 이웃사촌이 되었다. 

한번은 교회에서 나들이가 있었다. 박 할머니가 소풍 한번 다녀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무 걱정 말고 나만 믿어라, 큰소리를 쳤더니 "그럼, 내 한번 댕기 올게"라며 집을 나섰다. 나는 박 할머니 흉내를 내며 아이 곁에 붙어 앉아 밥을 떠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었다. 할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청소도 말끔히 해놓았다. 그런 나를 아이는 물끄러미 쳐다보다 찡그리다 미소 짓다 잠을 자다했다. 

아이와 나는 친해졌다. 나를 볼 때마다 머루빛 눈동자로 인사를 했다.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어릴 적 치료 중 몸속에 박아놓았다는 파이프 때문에 키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용변도 할머니께 맡겼지만, 내 앞에는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천사로 나타난 듯했다. 박 할머니가 언제나 손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 손녀만 보면 내가 자꾸자꾸 힘이 나지!"라며 행복해했던 이유를.

박 할머니는 집을 좁혀 이사하면서 피아노를 버려야만 했다. 오래된 피아노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데다 운송비와 조율비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가 치는 피아노에 맞추어 노래 부를 수 없게 된 것이 서운했지만, 손녀에게 피아노를 더 쳐주지 못하게 된 할머니는 더했다. 손녀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 손가락을 꼭꼭 짚어가며 놀던 피아노가 아주 헐값도 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박 할머니의 청력이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듣지 못하니 엉뚱한 답변이 나오기 일쑤였다. 전에 없이 잦은 감기로 병원을 들락거리자 그리 바지런하던 몸이 굼떠보였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손녀는 누가 돌볼 것인가, 어디로 보낼 것인가. 할머니도 똑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손녀와 한날한시에 천국가고 싶다고 소원했다. 손녀는 달리 아픈 데는 없었다. 가끔 열이 나고 체하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손녀의 눈짓 하나 표정 하나만큼은 제 몸보다 더 잘 느끼고 읽어 그때그때 치료해왔다. 

그날 입맛이 통 없다던 박 할머니와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이었다. 돌봄이 아주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숟가락을 밥공기에 얹어둔 채로 신발을 꿰차고 내달렸다. 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병원 가는 십분도 채 안 되는 길에서 손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다. "우리 아-를! 아이고! 며칠 전부터 토하긴 해도 약 잘 묵고 괜찮았는데…. 하나님아부지가 우리 아-를 내보다 먼저 델꼬 가셨네"

장례식에 아이의 아빠와 친척 몇 분과 교회 사람들, 이웃 사람들이 모였다. 관이 들어오자 박 할머니가 마중 나가듯 하며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너무나 짧고 단말마적인 울음 하나가 관 위에 떨어졌다. 그것은 박 할머니 마음에 평생 괴어있던 하나뿐인 왈바리 같았다. 그 버텨오던 힘이 굴러 떨어지자 장례식장엔 눈물이 번져났다.

손녀가 떠난 후, 피아노가 한 대 들어왔다.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박 할머니에게 아들이 사 준 새 피아노였다. 손녀가 누웠던 자리에 아직도 보드라운 이불이 깔려 있고, 만지작거렸던 토끼인형도 그대로 두고서 박 할머니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쳤다. 평소 손녀에게 쳐 주었던 동요들, 엎드려 기도할 때 불렀던 찬송가들이 흘러나왔다. 

"우리 아-가 아즉까지 꿈에도 한번 안비네"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전날 내 꿈에서 아이를 봤기 때문이다. 

"제가 봤어요. 온갖 꽃들이 가득 피었던데요, 햇살이 부챗살처럼 환하고요, 현지가 황새 같은 다리로 걸어다니며 놀고 있던데요" 

박 할머니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우리 현지 지대로 컸으면 다리가 억수로 길었을 끼다. 꽃밭에 있더나? 걸어댕기더나? 그래, 잘 걷더나? 머라카더노?"

작년 늦가을은 길었다. 긴긴 겨울을 지내는 동안 봄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또 봄이, 또 여름이 왔다. 우리 동네 태화강공원엔 지금 꽃 축제가 한창이다. 박 할머니는 요즘 꽃밭 나들이가 일이다. 오늘은 저 꽃밭 속에 피아노를 내다놓고 한번 쳐보면 좋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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