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락(餘樂)
여락(餘樂)
  • 울산신문
  • 2019.08.2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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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대학 모 교수에게서 나온 학문적 발언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 시기가 언제든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나는 요즘 한창 노는 것에 빠져있다. 한 사람이 일생 놀아야 할 총량이 있다면 내게는 지금이 그걸 채우고 있는 시간인가보다.

일생 놀아야 할 총량이 있다면
지금이 그 시간을 채우는 적기
벗과 풍광 즐기고 웃고 떠들며
남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몇 달 전에 모임 하나가 결성되었다. 먼저 두 사람이 알고 있던 사이였고, 그 중 한 사람이 또 지인 한 사람을 불러들여 '여락(餘樂)'을 만들었다. 남은 즐거움을 뜻하는 여락은 말 그대로 남은 즐거움을 찾아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를 지닌다. 무엇 하나 기준은 두어야 할 것 같아서 독서모임으로 했다.

고작 셋인 여락 회원은 자타가 공인하는바 재능이 유별나지도 않다. 점잖지도 않지만 함부로 나대지도 않는 성향을 지녔다. 하는 일이 제각각이어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함께 여행을 가기는커녕 정기모임을 두지 않고 상황과 마음이 허락될 때 식사 한 끼와 차 한 잔이 고작이다. 만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날 읽었던 문구 하나, 혹은 시 한 편, 어떤 날엔 철학적 신학적 이야기로 가슴을 채우며 대개 제 안의 묵은 허물벗기를 한다. 유머의 가장 큰 도구인 진솔함을 내걸고 만나다보니 즐거움이 절로 피어난다. 사람이란 아무리 머리를 쓰고 굴려도 바늘귀 같은 허점이라도 있게 마련인데 그 허점과 실수가 얼마나 타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지 모른다.

다산의 유세검정기(遊洗劍停記)가 떠오른다. 다산이 동무들과 어울려 놀다가 비 오는 세검정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풍광을 느끼고 즐길 줄 아는 다산과 친구들의 떠들썩한 놀이가 눈앞에 그려진다.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 폭포를 보는 것뿐이다."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신해년 여름에 여러 사람이 모여 노는 중 구름이 일어나며 천둥소리를 듣는다. 폭우가 쏟아질 징조라며 사람들은 말을 타고 세검정으로 간다. 아니나 다를까 정자 밑에 이르니 물소리가 암코래 수코래가 물줄기를 뿜어내는 듯하다. 정자에 올라 비 내리는 모습을 한껏 즐기며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고 말한다. 술과 안주와 익살스런 농담으로, 그리고 서로를 베고 누워 시를 읊조리며 즐기고 즐긴다.

여락을 안 후 사는 재미의 한 이유가 여기 있는가 싶다. 노는 것에서 남은 즐거움을 찾는다는 건 큰 행운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거나 찜질방에 하릴없이 머물며 웃고 떠들 때 나는 슬그머니 그곳을 벗어났다. 좀 더 알찬 속이 없을까 하며 일어섰다. 책을 보고 집안일을 하고 차라리 혼자 몽상하는 것이 뿌듯하고 행복했다. 이 좋은 재미를 나는 이제야 알았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루덴스로 나아간 인간은 창조나 철학이나 예술이 유희에서 온다고 한다. 과학의 발달도 놀이에서 온다. 4차 혁명은 호모 루덴스가 일으킨 혁명인가. 온갖 기기를 놀며 즐기기 위한 도구로 활용함으로 생활은 그저 편리해지고 있다. 내가 놀이에 빠져든 것도 내 삶의 창조를 놀이에서 찾아내기 위함일까. 글을 쓰려 끙끙거려도 글이 오지 않고 일이 점점 힘에 부치는 것은 놀이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서인가 싶다.

사춘기 시절 몸의 성장통과 감정의 난리법석처럼 인생의 허리점을 지나는 지금 나는 유희에 발광한다. 놀 거리를 찾아가며 논다. 끊임없이 놀이를 찾아내는 호모 루덴스로 변화되어 간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이 시간을 잠시 보류해서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게 우선이지만 운명처럼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노느라 오히려 더욱 부지런을 떨게 된다.

지랄 총량의 법칙을 학문적으로 얘기한 교수는 지독하게 말 안 듣는 청소년을 두고 심히 걱정하는 부모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다. 호르몬의 반란을 잠재울 수 없는 사춘기나 사춘기 열 배 이상의 열병을 앓는다는 갱년기에 부린 치기가 난리법석의 총량을 채워주는 하나의 모습이라면 나에게 지금은 인생의 나머지 시간을 즐거움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절적한 때인가 보다.

여락은 남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니 즐거움 총량에 지혜로운 분배를 하여 시간 안배를 잘 할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다. 한꺼번에 다 쏟아 붓는 대신 절제를 더한다면 더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나에게 남은 즐거움의 분량이 얼마 만큼일까. 노는 재미를 몰라 일에 빠졌는지, 일에 빠져 노는 기쁨을 몰랐는지 모를 만큼 지금까지는 일의 즐거움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시간의 여유를 찾아가며 즐기고 또 남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쏜살같이 날아가는 세월을 여락의 과녁에 맞추어본다. 여락(餘樂) 위에 여락(與樂)을 하며 활시위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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