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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울산에 사는 한 7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성금을 전달해 주변을 훈훈하게 한 일이 있었다. 이달 초 울산시 중구 병영1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한 기초생활수급자 A(70대) 씨가 담당 공무원에게 돈뭉치를 던지고는 밖으로 나갔다. 

A 씨가 던지고 간 돈은 오만원권 60장으로 300만 원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랐으나, 곧 A 씨를 뒤따라가 설득해 센터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했다. A 씨는 돈을 건넨 이유를 묻는 공무원들에게 "평소 국가의 혜택을 많이 보며 살아가고 있고, 항상 주위의 관심과 도움을 받아 고마움이 크다"며 "연말을 맞아 어려운 이웃이 많을 텐데 나도 조금이나마 누구를 돕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참전 유공자이면서 장애인이기도 한 A 씨는 참전 수당과 장애인 연금, 기초생활수급 등을 지원받고 있다. A 씨는 지원금 중 생활비를 제외한 일부를 수년간 모아 300만 원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돈을 쓸 일이 크게 없어 모으다 보니 이 정도 금액이 됐다"며 "남들이 다 하는 일을 처음 해놓고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우니 절대 얼굴이 알려지지 않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병영1동 행정복지센터는 A 씨에게 받은 300만 원을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의료 지원이 필요한 독거노인과 어려운 가정환경에 처한 학생 등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이처럼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은 반드시 여유가 있어야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달 시작한 연말 불우이웃 돕기 모금 행사가 최근의 추위처럼 얼어붙었다고 한다. 울산 시청 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은 좀처럼 수은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울산의 경우 지역 특성상 기업기부 의존도가 높지만 조선업 불황 등으로 지역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법인모금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조선과 자동차 업계의 장기불황에다 수년째 호황을 이어온 석유화학업체들까지 외면하면서 올해 목표액 70억 원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달 20일부터 시작한 '희망 2020 나눔캠페인' 모금액은 현재 9억여 원으로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12℃에 머물고 있다. 울산공동모금회는 내년 1월 31일까지 모금 목표액은 70억4,300만 원이다. 온도탑 수은주는 목표액인 70억4,300만 원의 1%인 7,430만 원이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저조한 실적은 울산지역 제조업의 장기불황에다 형편이 그나마 나은 석유화학업체들마저도 참여가 미미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울산의 경우 개인기부보다는 기업의 기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석유화학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집중된 곳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해의 경우 조선업과 자동차 등 제조업의 불황여파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둔 석유화학업종의 가세로 목표액을 달성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국제유가 불안 등으로 석유화학업종 업황이 요동치면서 지난해 실적에 못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현재까지 나눔캠페인에 호응하는 기업이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다. 상당수의 석유화악 업체들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시점에 기부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울산의 경우 어느 때보다 지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실물경제의 위기감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이어서 이웃에 대한 관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올해는 목표액 달성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목표 온도 100도를 초과해 울산시민의 사랑이 그대로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온도탑 수은주는 공동모금회가 모금된 이웃돕기 성금 액수에 따라 사랑의 온도를 높여 울산시민에게 '이웃사랑'의 현황을 눈으로 보이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전국 최고의 소득을 자랑하는 울산이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하루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극빈층이 널려 있다. 

공동모금회 측은은 "불황기일수록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은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울산시민 여러분들의 따뜻한 참여가 절실하다"면서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헤아리고 나눔과 희망을 함께해 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실물경제의 위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주위의 관심까지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힘든 시기일지라도 언제나 이웃사랑을 실천해온 울산시민들의 기부 열정은 식지 않았다. 자신의 힘든 상황에도 기부를 실천한 이웃처럼 시민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사랑의 온도탑의 온도만큼 우리 사회의 훈훈함이 전해져 이 겨울 소외된 이웃들의 얼굴에 넉넉한 미소가 피어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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