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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묵묵히 목수로 일하며 이웃 함께 더불어 살아온 다니엘 블레이크(59)는 어느 날, 심장병 때문에 의사로부터 일을 중단하라는 소견을 받는다. 그러나 파견 나온 비의료인 상담사는 신체적 기능에는 이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질병수당 지급을 거부하고 취업이 가능하다고 판단 내린다.

전문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질병수당을 거절당하고 항소조차 당장 할 수 없으며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선 취업교육을 받아야 하고 구직활동의 증빙을 제출해야 함은 물론, 인터넷을 사용해 본 적도 없는 데 인터넷으로 항소 신청을 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피로감만 쌓이게 된다.
시스템 앞에서 끊임없이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서류로 증빙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서 서서히 위축되어가는 그들의 존엄이 괴로울 만큼 냉정하게 화면을 메운다.

이 이야기는 시스템의 비인간화를 꼬집으면서 시스템 밖의 따뜻한 손길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 것으로 오랫동안 사회 문제를 탐구해온 80세의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시놉시스다.

결국 시스템에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불편한 진실에 대한 절망감과 희망을 동시에 전달해준 이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 모습과 유년기 때부터 40년 이상 그림을 그려온 필자의 모습이 많이 겹쳐진다.

필자는 그림을 그리면서 갤러리를 운영하다보니 동료 예술가들의 살림살이가 뻔히 보인다.
젊은 예술가는 젊은 예술가대로 안쓰럽고 중견작가는 중견작가대로 안타깝다. 생계조차 곤란한 작가들에겐 작품을 쌓아둔 채 작품 발표를 미루고 있거나, 작업에 필요한 물감 살 돈 벌려고 작업을 잠시 미루고 있다. 실험작을 해 보려는 작가들에겐 금전적으로 큰 부담으로 시도조차 꺼려하고 있다.

좋은 작가 발굴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갤러리가 벌써 6년을 접어들지만 아직  재정난에 자유롭지가 않아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매입하는 등 금전적인 지원은 어렵다.

그래서 필자의 갤러리는 연대만이 소외 받고 있는 지역 예술가에게 응원이 돼 작업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으로 SNS를 이용해 작가들의 작품과 근황을 소개하고, 동료 예술가들과 밥을 같이하면서 여러 예술지원사업 공모를 공유하고 정도다.

그런데 중견 작가들 대부분이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사업지원 신청 단계부터 고생한 경험으로 미리 포기하거나, 창작 작업에 간섭 받기 싫어서 아예 생각조차 안하거나 추후 정산보고에 너무 공포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는 예술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설득으로 올해는 같이 전시를 기획하고 서류작성을 한 것이다.
필자 또한 행정업무는 서툴지만 그동안에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기획서나 지원사업 공모를 경험으로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울산문화재단의 예술지원사업을 공모하고 정산을 하는 데 함께 했다.

예술지원사업 공모기간에 정산보고 건도 있어 걱정도 앞섰다. 그런데 그동안 고약한 시스템에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시스템에는 절대적으로 사람의 따스함이 없을 법한데 다행히 이번 시스템에는 재단의 담당자의 따스한 손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 치와 울산문화재단의 따스함으로 이번 공모기간은 시간이 넉넉한 줄 알았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갤러리에 관람객들이 자꾸 다녀가는 것이다.

다들 처음 만나는 관람객들이어서 으레, 지금 갤러리에 박주석 사진가의 초대전을 하고 있어 박주석 작가의 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림을 좋아해서 '울산전시' 검색해서 온 것이라고 한다.

올해 대학 입학을 앞둔 젊은 친구들의 수줍은 발걸음이 많았다. 아주 더디지만 울산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구석구석에 서 말의 구슬이 잘 다듬어지고 있는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곧 이 구슬을 꿸 실은 바로 예술가이다. 보배를 빨리 보고 싶다면 소외되고 있는 예술가, 사라지려는 예술가들이 단단한 실로 영글어지도록 좀 더 응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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