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흥정소리 줄었지만 꾹꾹 눌러담는 인심 그대로네
왁자지껄 흥정소리 줄었지만 꾹꾹 눌러담는 인심 그대로네
  • 울산신문
  • 승인 2020.01.22 23:00
  • 기사입력 2020.01.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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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언양알프스시장 설 대목 풍경]
22일 설 명절을 앞두고 찾은 울주군 언양알프스시장. 경기가 좋지않아 예전처럼 왁자지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수북하게 담아주는 시장 인심은 여전했다.
22일 설 명절을 앞두고 찾은 울주군 언양알프스시장. 경기가 좋지않아 예전처럼 왁자지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수북하게 담아주는 시장 인심은 여전했다.

시장의 새벽 공기는 얼어붙은 지역경기 만큼 매서웠다. 설 연휴를 앞둔 상인의 얼굴에는 미소 대신 근심이 가득했다.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고 명절풍습이 바뀌면서 '명절 특수'가 옛말이 된 탓이다. 특히 손님이 많이 줄어든 올해는 어깨 부딪히며 벌어지는 왁자한 흥정이나 야단스러움은 종적을 감췄다. 그래도 비닐봉지 터지도록 '꾹꾹' 눌러담아주는 인정만은 다행히 그대로였다. 치솟은 물가에 혀를 내두르고 얇아진 지갑에 장바구니 절반도 못 채워 돌아서지만 후한 시장 인심이라도 안아가니 손님들도 위안을 받는다. 경제한파 속에서 '설 대목'을 맞은  '언양알프스시장' 풍경을 담아봤다. 편집자


불황에 소비 위축 명절특수 옛말
줄어든 판매량 만큼 물량도 축소
장사 준비 끝냈는데 곳곳 빈 매대
"새해엔 더 나빠지지 않기를 소망"

 

# 명절 풍습·유통 형태 변화로 손님 크게 줄어
22일 오전 8시 찾은 울주군 언양읍 영남알프스 시장. "옛날과 비교할 바 못 되지. 이제 큰 기대도 안 해." 이른 시간이라 아직 한산한 시장에서 전통과자 장사 준비를 하던 장돌뱅이 황후자(58) 씨는 푸념 섞인 한숨을 내뱉았다.
 
황 씨는 "명절 특수는 옛말이야"라고 말하는 사이 땅콩강정 한봉을 사러온 첫 손님에게 "날씨가 춥죠"라는 말을 건네며 전통과자를 '덤'으로 쥐어줬다.
 
그 시간 황 씨 등 뒤로 보이는 점포마다 장사준비가 한창이었다. 바로 옆 제수용품 가게는 이날 나갈 물량을 눈대중으로 소쿠리에 담아 분류하느라 분주했다. 한 소쿠리를 저울에 올려 놓으니 정량보다 훨씬 넘어서지만 상인은 "수북하게 담아가야 시장 오는 맛이 있죠"라며 덜어놓지 않았다.
 
옆 과일가게는 트럭에서 배송된 사과와 배 상자를 모두 내려 진열하느라 바빴다. 하루 장사 준비를 마쳤는데도 빈 매대가 많이 보이는 건, 줄어든 소비량에 맞춰 물량을 크게 축소한 탓이라고 했다.
 
이순자(큰애기농산·65) 씨는 "42년 동안 장사했다. 최근 2년 전부터 급격히 판매량이 줄어 힘들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씨는 "물량을 줄였지만 이것도 다  팔릴지는 잘 모르겠다. 일년 내내 쉬는 날 없이 계속 장사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못 산다"며 "새해에는 더 나빠지지 않고 살수 있는 것이 소망"이라며 씁쓸해했다.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 정육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시장 안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40년 동안 장사했는데 올해처럼 힘든 건 처음이다. 어제도 하루 종일 장사해서 고작 20만 원어치 팔았다"며 "요즘은 명절에도 여행을 가거나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가구도 많다. 차례를 지내더라도 온라인으로 제수용품 구매를 많이 하다보니 매출 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또 "특히 올해는 명절 연휴가 짧아 기대 실적은 내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모처럼 시장이 손님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설 명절을 앞두고 모처럼 시장이 손님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 지난해 잦은 태풍에 채소류 등 가격 올라
한 시간 지나 9시가 되자 텅빈 시장에 손님들이 제법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종희(62·언양읍) 씨는 "작년에는 제사상 차리는데 22만 원 이 들었다. 계산해보니 올해는 27만 원 정도 나오더라"며 "생선은 의외로 저렴했는데 나물·야채 등 부재료가 비싸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실제 이날 기준 시장에서 판매는 건어물, 야채할 것 없이 대부분 제수용품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 명태포 한 세트(1마리 반 분량)는 3,000원으로 단일품 가격은 지난해와 같았지만, 두 세트를 사면 5,000원으로 1,000원 깎아주던 할인 혜택이 없어졌다. "명태 가격이 올라 이 마저도 마진을 남기기 어렵다는 것"이 상인들의 입장이다.
 
무도 개당 2,000원으로 지난해 1,500원보다 500원 뛰었다. 태풍이 자주 온 지난해 작황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상인들은 "며칠 전까지 해도 개당 3,000원에 팔았는데, 명절이 다 돼 가는데도 많이 나가지 않아 1,000원 낮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소매 정보를 보면 채소와 육류·수산물 등의 가격은 1년 전보다 크게 올랐다. 가령 21일 기준 배추의 평균 가격은 포기당 4,629원으로 1년 전(2,594원)보다 약 2,000원 비싸졌다. 무(2,870원)도 지난해 가격(1,433원)의 2배로 뛰었다. 동태, 갈치, 고등어, 한우 갈비, 한우 등심 등 수산물과 육류 가격 역시 지난해보다 적게는 몇 백 원에서 많게는 몇 천 원씩 올랐다.

설 명절을 앞두고 모처럼 시장이 손님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설 명절을 앞두고 모처럼 시장이 손님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 "싸고 신선하다"…그래도 전통시장 발길
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팍팍해진 살림살이 탓에 선뜻 지갑을 열진 못했지만 여전히 전통시장의 제품을 선호했다.
 
주부 김현주(언양읍·54) 씨는 축산물도매유통센터에서 조금더 신선한 정육을 구매하기 위해 이른 아침 시장을 찾았다. 김 씨는 "아침에 안 오면 줄을 많이 서야한다. 회전율이 높으니까 고기가 그 만큼 신선하다"고 말했다.

성영옥(범서읍·60) 씨는 "2~3년 전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하면서 장바구니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가족들이 저녁에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들 위주로 꼭 필요한 것만 사니까 소량으로 살 수 있는 전통시장을 더 찾게 된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의 경기 회복을 기원하는 시민들도 종종 있었다.
 
한국살이 15년 째인 한 중국인 할머니(60)는 "중국도 흥정 문화가 있는데 한국 시장에서도 흥정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경기가 어려워진 뒤 흥정이 많이 사라져 아쉽다"며 "마트에는 없는 덤이 있고 정겨움이 살아있는 전통시장이 옛 명성을 회복하고 왁자지껄한 풍경도 되찾길 바란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하주화기자 usjh@·김가람기자usk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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