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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생각하면

                                                                     김금희

내 안의 흐느낌이 잔잔하다 끝내는 광풍이 되고 있어
왜 아무 말 못하고 살았느냐 말해 놓고
그것이 내게 하는 말 같아서
엄마와 내가 너무 같아서
글이라도 쓰지 그랬어 말해놓고
나도 못 쓰는 글을 엄마에게 떠넘기는 것 같아서
착한 끝은 있다고 누누이 말하며 나를 달래는 말을 듣고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 말해 놓고 엄마처럼 사는
나를 볼 때
어디까지 엄마이고
어디까지 나인지 몰라 그만,
내 안의 흐느낌을 그만두고 싶어 울음을 멈추려는데
흠칫, 내 딸이 보이고 내 아들이 보여 엄마를 붙잡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내 안의 당신과 흐느끼고 있어


△김금희: 2011년 '시애' 등단, 시집 '시절을 털다' '꽃에도 무게가 있다'.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공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시가 독자의 숨겨진 통점을 찾아가서 스스로 스며드는 것이다. 피가 흐르는 상처부위에 맞게 적절히 처방하는 것이 약이라면 시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르는 나에게 와서 온몸에 길을 내며 상처 속으로 깃드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독자는 질끈 묵어두었던 통점을 풀어 "아, 여기가 이리도 아팠던 것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엄마를 생각하면', 우리는 시의 제목에서 벌써 무너지고 만다. 이 하염없어지는 허공이라니. 아,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이고, 게다가 '생각하다'가 아니라 '생각하면'이라니. 어쩌나, 와락 눈이 먼저 뜨겁다. 이 미완의 문장을 이을 다음 말이 참으로 대책 없이 쏟아진다. 이 말들은 내 몸 어디에 저장되어 있었기에 이리 빠르게 달려오는가. 너무나 많은 영상이 보이고 너무나 많은 소리가 들린다. 어쩌나, '생각하면'에 이어 끝없이 써내려갈 다음 말들 앞에 다시 먹먹하다. 시인은 그 제목아래 첫 행을 흐느낌이 잔잔하다가 끝내 광풍이 되고 있다고 말하며 진행시제로 휘몰아치고 있다.


"왜 아무 말 못하고 살았느냐 말해 놓고/그것이 내게 하는 말 같아서" 등 시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서사는 시인의 사적인 이야기지만 누구나 딸이라면 가슴 한켠에 간직되어 있을 법한 말이다.
착한 끝은 있다고 시인을 위로하는 엄마의 말에 울음을 멈추려다가 "내 딸이 보이고 내 아들이 보여" 투병 중인 시인은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다시 엄마를 붙잡고 흐느끼고 있다. 엄마가 된 딸이 폭풍처럼 울고 있다.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착한 끝은 있다고 아픈 딸을 또 다시 다독이고 있을 그 '엄마'의 벼랑 같은 손바닥은 또 어찌하면 좋겠는가.


"어디까지 엄마이고 어디까지 나인지" 모르는 이 아득한 장면을 알고 있는 또 한 사람, 시인의 딸 역시 '엄마'가 될 것이다. 그 자녀를 키우며 희로애락을 시인의 품에 와서 풀어놓을 '엄마'가 될 것이다. 힘내시라.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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