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뤄둔 동시집들을 필사했다. 임수현 동시집 '외톨이 왕'도 그 중 한 권이다. '제7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거머쥔, 2019년을 강타한 동시집 '외톨이 왕'에 사흘 밤을 꼬박 투자했다. 급변하는 동시계에 임수현이란 샛별의 등장은 어떤 의미일까? 격월간 '동시마중'편집자인 이안 시인의 해설에 남윤잎의 그림까지 가세해 동시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갈래머리를 하고 땡땡이 반바지를 입은 여자애가 혼자 산을 내려오는 장면부터가 심상찮다. 우리의 영원한 산 머슴애 "야―호"가 "땡땡이 반바지를 입은 갈래머리 꼬마 소녀"로 둔갑했다. 소녀에게 홀린 독자들은 갖가지 추이들을 내놓는다. '산을 내려간 꼬맹이는 머물 곳이 있을까? 조손 가정 아이라면 정원사 타샤 할머니 뺨치는 감성파 할머니에 미혼 고모까지 동원된 패션센스다. 갈래머리는 보나마나 종종종 땋아 내렸겠지? 흥얼흥얼 입술에서 노래를 놓지 않는 게 부계모계 다 가순가? 에궁, 산속 바위에 혼자 앉은 그 외로움이 얼말까?' 궁금증을 잠시 접고 소녀가 주인공인 시 '메아리'를 불러온다. 

메아리

작은 새는
메아리를 본 적 있는데
아주 작고 귀엽게 생겼더래요

갈래머리를 하고
땡땡이 반바지를 입고 있더래요

메아리는 작은 바위에 혼자 앉아
나뭇잎을 똑똑 따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가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뒤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라 내려가더래요

-임수현 ‘메아리’ 전문

필사는 녹록지 않았다. 동시 여기저기에 흐르는 몽환적 분위기에 휩싸인 게 그 이유다. '메아리'를 시작으로 '이게뭐야할머니'(이안 시인은'삼신할미'라고 해석하고 있음), '내가 아주 작았을 때', '눈먼 할머니를 부르면' 같은 시들이 그 대표적 예다.  

이게뭐야할머니

할머니, 머리에 이고 가는 게 뭐야
그 안에 든 게 뭐야
누구 주려고 가져가는 거야
아이들은 묻고 또 물었어

이게뭐야할머니는
항아리에서 버들치를 꺼내다가도 답하고
새를 꺼내다가도 답했지
답하고 답하느라 손이 닳는 줄도 몰랐어

(하략)

-임수현 ‘이게뭐야할머니’ 부분

남은우 아동문학가
남은우 아동문학가


"구석진 곳 의자 하나만/왕관처럼 주어진대요" '외톨이 왕'에서 보듯, 구석진 의자 하나 차지하고 시를 쓰다 가야하는 게 시인의 운명이다. 이제껏 시작(詩作)이 운명에 맞불을 놓는 것이었다면 운명에 순응하는 나긋한 시인이 되리라, 꾹 눌러 써본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