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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도

                                                                         정창준

나는 4월에 울음을 배웠다.
엎드린 동백에게서 울음을 배워서
지심도를 닮아 쉽게 저물었다.

가족보다는 가족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푸르고 단단하게 묶어 줄,
소리가 되지 못한 말들은 죄다 울음이 되어 떨어졌다.
밤은 허락없이
지나온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망각은 꽃 속처럼 깊고 아득해서 멍든다.

푸르고 단단한 화관처럼 에워싸 줄 수 있는 사람,

그러나 부끄러웠던 젊은 날이여,
뚝뚝,
초점거리 밖으로 밀려난 친구들이여, 뚝뚝,
등을 두드려 주고 오래 눈을 바라보던 시간들이여, 뚝뚝,
한 우산 아래 앉아 젖어가던 새벽의 우리여, 뚝뚝,
청춘이란 하루하루가 접착된 서적 같은 것이어서
한 장씩 찢겨지는 대신 한 권의 시절이 투신한다. 뚝뚝,
우는 사람에 대한 세상의 인내는 길지 않고
제 몸에 깃든 울음만이 오래간다.

세상과 달리 너는,
아프다 대신 아팠다고 말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정창준 시인: 1974년 울산 출생.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1년 '경향신문' 통해 시인 등단. 현재 대현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 수요시포럼 동인. 시집 '아름다운 자'.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사람은 태어날 때 첫 울음을 운다. 열 달의 웅크림에서 산도를 통과한 감격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지심도와 공곶이는 지금 동백꽃 청춘이 불꽃으로 펴오르고 있다.


4월에 울음을 배웠다면 아마도 개인사적인 것이 아니라면 보편적인 것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제주 4·3사건과 4·19혁명이 있었다. 1982년 4월에 1명의 경찰이 62명의 주민을 살해했으며,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건 등등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있다. 엘리어트의 '황무지' 첫 구절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또 유명하다. 죽고 죽이는 잔인함이 아니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명의 숭고함, 그 고단한 몸부림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가 봄이라는 역설로 오는 것이다.


뚝뚝, 뚝뚝, 동백 모가지가 끊어지는 소리는 관절을 부러뜨리는 만큼의 고통으로 달려든다. 청춘의 한 때를 엮었던 책처럼, 불꽃처럼 타 오르다 뚝뚝 떨어진다. 정의를 부르짖다 끌려간 친구에게 미안했고 가족처럼 울타리가 될 수 없음을 슬퍼하며 뚝뚝. 등 두드리며 서로의 눈으로 읽는 마음이여, 어느 날 시야에서 사라지고 멀어지며 마이너가 된 친구여 뚝뚝.


세련 없는 무권력의 청춘이야말로 어떤 끈끈함으로 붙어진 서적이었던 것이다. 지나고 보면 나의 부끄러움으로 밀려온다. 한 때의 시절들이 모가지 째 투신한다. 아픈 시절이여 피 흘리며 뚝뚝, 불의를, 부조리를 외면했던 부끄러움이여 뚝뚝.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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