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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줄임표
                                                                

이정록

바늘이 지나간 한땀 한땀은 말줄임표 같다. 말줄임표에는 마침표가 하나씩 박혀 있다. 말줄임표 하나에 일곱 문장, 여섯 문장은 짧고 한 문장은 길다. 소실점을 향해 박음질된 문장, 시의 운명이다. 마침표만 오롯하다. 삶이 흐느낄 때마다 시는 골무처럼 깜깜해졌다. 골무는 마침표를 반으로 자른 것 같다. 마침표에 손가락을 끼우니, 몸이 숯덩이 전집(全集)이 된다.

△이정록 시인: 1989년 대전일보,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제발' '어머니 학교'외.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외, 산문집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수상.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부호는 언어 이전의 언어이다. 말 이전의 소리이고 말이 다 사라진 후에도 영원히 숨 쉴 수 있는 상징이다. 우리가 매일 홍수처럼 쏟아내는 말의 바다에서도 의사소통의 벽은 점점 더 높아만 간다. 볼륨을 아무리 크게 하고 말의 단면을 더욱 섬세하게 갈아 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혼돈의 바다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저물녘에는 부호에 기대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물음표에 느낌표로 답하고 그 느낌표에 다시 말줄임표로 마무리하는 짧은 대화가 있다면 저녁은 한없이 깊어질 것이므로.
문장부호는 그 자체가 은유이고 한 편의 시와 같다. 그 중 말줄임표가 가장 시적이다. 아마 여섯 개의 점 뒤에 오는 한 개의 마침표 때문이리라.


이 시에서 말줄임표는 박음질 자국이다. 박음질은 시침이나 홈질의 직진성과는 달리 돌아보고 다시 감싸는 자기성찰의 바느질이다. 바늘땀 새긴 자리를 뒷면에서 다시 한 번 지나가야 그 다음 땀을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막 생겨난 박음질 한 땀은 직전의 자리를 감싸 안고 나서야 시작되는 것이다. 시인은 이 한 땀 한 땀의 뒷면에 숨겨진 실과 바늘의 진중한 나아감을 읽어낸 것이다. 말줄임표 점 하나 하나가 품은 문장의 실타래를 박음질에서 읽어낸 것이다.


그래서 "소실점을 향해 박음질된 문장"이, "시의 운명"이고 이것은 또한 매순간 시간을 박음질을 하고 있는 삶의 본질인 것이다. 유년에 무심코 보고 자란 장면에 우리는 생의 깊숙한 곳을 통째로 내주는 경우가 있다. 박음질을 이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물러났다가 다시 조심스레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기도 같은 모습이다. 성큼거리는 시침질과는 달리 뒤돌아보고 다시 자신의 걸음을 어루만지며 내딛는 생의 발자국 같은.


"삶이 흐느낄 때마다 시는 골무처럼 깜깜해졌다." 마침표만큼 캄캄한 문장부호가 있을까. 시인은 그 마침표를 반으로 잘라 골무로 끼고 있다. 그 손가락으로 물러나고 나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음질 자리라는 기표(記表) 뒤에는 "몸이 숯덩이 전집이 되"는 말줄임표의 기의(記意)가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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