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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다. 봄은 봄인데 작금은 신종 코로나19로 인해 전한 미인 낙안(落雁) 왕소군이 흉노 왕에게 가던 마음처럼 정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동방규, <소군원>), 봄이 봄이 아니다.

100년 전에도 조선 26대 마지막 국왕이자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 이재황께서 기미년 1월에 붕어, 3월 인산 즈음에도 봄날이었지만 봄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 선인들은 러·중·미·일 등 열강들 약육강식 이빨 앞에 주춤거리다 일본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지 꼬박 10년이었고, 그 철권의 고통 벗어나려 투합한 삼천리 각 골 지사·의병들은 기미년 인산 직전 3·1 대한독립만세를 비무장 평화투쟁으로 비밀리에 계획, 남녀노소 없이 온 겨레가 함께 일본제국주의 총칼 앞에 맨몸 맨주먹으로 저항했다.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대한독립 부르짖었다.

그때 그 참절·신산했던 근대 무렵을 함께 겪어 낸 황제, 그의 국상을 우리 선각들은 천재일우의 방패삼아 침략주의 일본제국에 대한 투쟁의 최적기로 보았다. 소위 이대도강-복숭아나무 구하려고 오얏나무를 희생함(남제서 왕경칙전의 36계 중 11계)을 한 것이다. 이를 좀 다른 각도에서 힘을 빼고 보면 긍정적 숟가락 얹기다. 저 유명한 십이지 동물들의 경주에서 십이지의 첫째가 된 조그만 쥐가 커다란 소의 뿔에 몰래 매달렸다가 앞으로 뛰어내려 소보다 앞이 된 건 순발력 있는 기지다. 하긴 예기치 않은 시간, 손과 밥상을 받을 때면 흔히 숟가락 하나만 얹으면 된다고 권하던 것도 실은 한 지붕 식구라는 따뜻한 공동체적 시각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런 숟가락 얹기는 부정적 시선일 경우가 더 흔하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으스댐)를 통해 권력의 외척이나 혈족 등이 그 권세를 앞세워 허세 부림의 우의적 풍자요 비유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내려가면 뻔뻔한 이기와 최소한의 양심 혹은 수치심조차 내던져버린 물신숭배 반인륜으로까지 추락한다. 구제불능의 바닥이다.

이런 극도의 이기주의로서의 숟가락 얹기 곧 탐욕과 영악으로 똘똘 뭉친 비겁한 기회주의를 가장 혐오한 시인 중 하나가 '4월'의 시인 신동엽이다.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전문)

신동엽의 대표작인 이 '껍데기는 가라'를 보면 '순수, 진정성, 참, 평화' 등으로 읽히는 "알맹이, 그 아우성, 향그러운 흙가슴"들이 가득한 세상을 소원하며, 반대로 그들을 위협하고 짓밟으려는 세력인 "껍데기, 그 모오든 쇠붙이"로 상징되는 부도덕하고 탐욕적이며 정의롭지 못한 것들의 소멸을 갈망하는 시인의 세계가 명징하다. 

사실 신동엽이 생전 국어교사로 근무했던 명성여고(현 동국대 부속 여고)에서 교장을 역임한 문학박사 김형중은 한 글에서 "신동엽의 사상은 불교의 중도(中道)다.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정한 길"을 가는 것이라 했는데, 시를 보면, 우리 민족으로 읽히는 "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을 서로 주고받고 새 삶을 시작하니 신동엽은 과연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선 더불어 얽혀 살아가는 참 평화주의 시인이었음을 알겠다.

그러나 필자는 신동엽의 평소 성격, 시 속의 '사월'이 첫 연에 배치된 점과 함께 시가 창작되던 무렵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그 의도는, 1960년 제4대 정부통령 선거의 부정·불법을 규탄하며 일어난 3·15학생의거는 4·19 혁명의 직접적 도화선이었다. 그 원동력은 불의 앞에 참지 않고 분연히 일어난 학생들의 순수한 애국·애족·정의감이었는데, 그를 옆에서 엿본 일부 정치세력들이 그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역이용하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읽힌다. 그야말로 약삭빠른 정계의 숟가락 얹기를 매섭게 질타한 거란 생각이다.

그런데 중국 우한 발 신종 코로나19가 최근 국내 특히 대구경북권역에 집중 확산된 배경에 모 단체가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련된 경악할 사실이 속속 들려온다. 

"우한에는 선교하러 가지 않았고 우리는 무관하다. 모 교회에 예배 보러 간 적 없다고 해라. 명단은 이것이 전부다. 정부는 질병 전염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고 있다. 우리는 가장 큰 피해자다. 신종코로나19 PCR 검사, 역학조사 다 받겠다" 등등 그러나 ㄱ일보 3월 3일 단독 보도를 보면, 정부는 "우한 등 중국 신*지 지역책임자 1월 대거 입국"을 파악해 조사 중이고, 일부는 발열 등으로 확진된 뒤에야 신도임을 실토했고, 경산시청 근무 중인 한 공무원 신도는 확진자로 드러났고, 모 학생 신도는 자가 격리 중에도 민원서류를 떼고 활보했다. 제출한 그들의 시설과 명단도 실제와 달랐고, PCR 검사, 공무원들의 확인전화조차도 거부가 빈번했다. 이에 시민들은 아연실색 분노하며 말을 못 잇고 있다. 그들의 행태는 정말로 이기의 한 극을 보인다. 

보건당국은 어떻게든 유증상자의 감염여부를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확진자를 일반 시민과 분리하려고 사투중이다. 그래야 전염을 가장 신속히 차단하고 증상별 치료에 진력할 수 있다. 지금은 국난이다. 분초를 다툴 만큼 화급하다. 이 와중에 적극 협력은 못할망정 방해라니! 그런데 이 시간 보건현장에 투입된 일부가 과로로 쓰러졌다는데 더 나쁜 소식이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담보할 마스크로 10배 20배 폭리라니! 세상 최악의 숟가락 얹기다.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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