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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탈출

봄이 나무동네 비상벨 울렸나?

꽃들 비상구 열고 탈출한다 

비상벨 소리에 놀란 꽃들의 탈출이 줄을 잇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다. 삼월을 열흘이나 남기고 산수유가 노란 망울을 터트리더니 천리향과 동백이 그 뒤를, 살구나무가 비상벨을 울릴 만발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입과 코를 봉한 채 꽃마중을 해야 하는 아픈 봄이다. 나무와 새들에게도 마스크를 씌우고 있을 시인들. 창궐하는 바이러스 속에서도 동시는 태어나고 동시집은 엮어지고 있다.
동시집 '나무동네 비상벨'(2019년 11월)은 대구시인 박승우와 대구출판사 '브로콜리숲'의 합작품이다.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동시집이기도 하다.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푸른문학상, 오늘의동시문학상, 김장생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박승우 시인의 시력을 녹여낸 91편의 동시들은 번득인다. 매 편 6행을 넘지 않는 단시의 매력에 흠씬 빠진다.  

풋사랑

벌과 살구꽃이 만나서 한
풋사랑

이루어지면
새콤달콤 살구!


꽃 

벌 오토바이와 나비 택시 드나드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주유소
 

남은우 아동문학가
남은우 아동문학가

페이지 어디에선 소녀 살구꽃과 소년 벌이 풋사랑에 빠져있고, 어느 페이지에선 오토바이를 탄 벌이 나비 택시 틈에서 주유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페이지에선 낮 동안 꽃구경 다닌 꿀벌 가족의 꿀잠이  "우표도 없이/주소도 없이//항공우편/날아간다"('기러기'), "눈사람은/어른으로 태어나서/어린애가 되어간다/오줌도 싼다"('눈사람'), "퉤!/입에서 뱉어 낸/까만 수박 씨//땅속에 들어가더니/수박 한 덩이 달고 나왔다"('변신'), "고양이에게 쫓기던 쥐가/쏙, 들어간 구멍//쥐는 한숨을 돌리게 하는 구멍/고양이는 한숨을 쉬게 하는 구멍"('구멍'), "바람배달부가 민들레 씨앗을/어어쿠, 잘못 배달했어요/흙길 3번지를 시멘트길 3번지로//어쩌나, 저 택배!"('택배')
이처럼 재미와 깊이로 똘똘 뭉쳐진 시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하늘에 순응하는 나무들은 코로나 따위에 겁먹지 않는다. 때 맞춰 꽃을 내보내며 거침없는 자신의 봄을 산다. 비상벨을 팡팡 울려대는 꽃나무 아래만이라도 마스크를 활짝 벗자. 그리고 살자. 다시 오지 않을 봄, 우리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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