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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지는 동안


                                                                 이궁로

세상 숨소리 깊어지는 사월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도
뼈 속으로 숨어드는 피의 한기(寒氣)
쇄골 사이로 눈물은 흐른다
내 그리움은 닿지 못하는지
사십 도를 오르내리는 열꽃 따라
몸 안으로 우물의 물길 열렸다 닫힌다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열흘
지금 나는 시간의 정의를 믿지 못하겠다
생의 한 표를 갈망하는 확성기 소리
표밭 맴돌다 배밭으로 숨어드는데
그 소리 꽃을 흔든다
누구든 생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을까
한 표를 갈망하는 동안
유행성 독감 바이러스는 내 몸을 갈망한다
속수무책, 나는 고스란히 사월을 잃어버리고
원류를 찾아 헤매는 마음의 지류는
우물 속으로 흔적 남기며 물길을 튼다
링거액은 흰 배꽃 잎 같이 떨어지며
꽃이 되고 싶은 육체 속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이궁로: 충북 제천 출생. 200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6년 문예진흥위원회 시 창작기금 수혜. 울산 작가상 수상. 시집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따뜻한 시간으로 갈수록 꽃은 피었다 지고 한 표를 갈망하는 시끄러움은 더운 열기로 충만할 텐데 시인은 사월이 깊을수록 춥다. 꽃의 향연이 절정인 봄날에 몸속으로 열꽃을 피우는 고통의 시간은 계절을 잃었다. 그 사이 시인의 봄은 지나고 생의 중심에 서고 싶은 열망이 더 견고해진다. 유행성 독감 바이러스는 핑계일지 모른다. 봄마다 찾아오는 허기로 그리움은 속수무책 병을 받아들여야 오히려 위안이 된다. 쇄골 사이로 흐르는 눈물이 그래서 슬프지 않다. 링거액이 배꽃 같이 천천히 떨어지는 동안 시인의 봄이 모여들 것이다.


청량면 수문리 산등성이에 하얗게 융단을 펼쳐 놓은 듯 배꽃 천지다. 거리엔 배꽃도 아닌 사람들의 흰 마스크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걷고 있다.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특생을 가진 기이한 반생명체일 뿐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꽃들이 순서대로 시간을 건너고 있듯 세상의 빠른 쾌유가 간절하다. 봄꽃이 조용히 휘날리는 거리에 다시 찾아 온, 한 표를 부탁하는 후보들의 명함이 꽃잎처럼 떨어져있다. 누구에게나 간절함은 오래 식지 않는 뜨거움이다. 모두 뜨거움이 안겨줄 희소식을 기다려 보자. 꽃 피는 열정으로 분주한 날이 지나고 꽃 지는 동안 우리는 어떤 생의 중심에 서게 될까 궁금해진다.
시인이여! 아프지 마시길.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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