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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희 동시조집 '우리 속에 울이 있다'(푸른책들·2018)를 펼치면 연두 바람이 몰려온다. 4부 66편의 동시조들은 건강하고 싱싱하다. 동시조가 주는 신선한 운율에 빠지는 것도 매력이다. 파릇파릇 동심이 움트는 동시조 세상에서 울려 퍼지는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꽃들, 곤충들, 곡식, 사람, 계절의 향기에 흠씬 취해본다.


가지마다 뾰족뾰족
푸른 촉을 내밀고선

나무마다 그루 그루
한 편의 시를 쓰네.
온 숲이
출렁이는 시네.
푸른 시집 한 권이네.

- 박방희 '시 쓰는 봄 나무' 전문

봄 나무마다 돋는 새 잎은 펜촉이 되어 푸른 시집을 선사한다. 꼭. 꼭. 꼭. 다져 찍은 마침표들도 정갈한 시어가 되어 앉아 있다.
"동시를 쓰기 시작한 지 17년, 시조에 입문한 지 8년 만에 그간 써 모은 동시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습니다"<시인의 말> 서문이다.
시, 시조, 동시, 산문을 넘나들며 창작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시인은 일흔다섯이다. 가르치기 좋아하는 근엄한 할아버지 시인보다는 개구쟁이 어린이가 되어 시와 뛰어 노는 분이다.
시로 그림을 그리는, 동시와 시를 따로 구분 짓는 우리 시단의 경향을 뛰어넘어 동시의 국민화와 세계화에 기여하는 분이 박방희 시인이다.

꽁지를 곧추세워     
자맥질하는 오리

주둥이는 고기 쫓고
똥꼬는 기도하네.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하느님 감사해요! 

- 박방희 '오리의 기도'전문
 

남은우 아동문학가
남은우 아동문학가

똥꼬로 기도하는 오리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얼마나 간절하면 똥꼬로 기도할까? 하나님은 어찌 요 깜찍한 기도에 답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도가 막힌 요즘, 아기 오리가 되어 똥꼬를 쏘아 올리면 내게도 일용할 양식을 펑펑 내려주시려나? 시인의 연륜과 익살이 녹여낸 동시조 '해요일'에도 빠져본다.  

동무들과 들에 나가 해바라기씨 까먹어요.

씨 안에 들어앉은 햇빛도 까먹어요.
잇새에 끼인 햇살이

저물도록 반짝여요.

- 박방희 '해요일' 전문

"씨 안에 들어앉은 햇빛" "잇새에 끼인 햇살"을 "저물도록 반짝여요"라는 시인을 누가 이길까. 오래 드리지 못한 안부를 이 시조로 부쳐본다.
정말 더 늦기 전에 "선생님! 은우예요…" 연둣빛 안부 한 줄 올려야겠다. 해바라기에 끼인 햇살을 종일토록 까먹으며 강길을 걸을 가을이 벌써부터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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