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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분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날의 기억을 없애고 싶어요" 이게 가능할까? 앞으로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현재 의학적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이유는 뇌가 정보를 기록하는 방식이 특정 부위에 특정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기억이든 뇌 모든 부분에 펼쳐 저장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컴퓨터 메모리나 일기장에 어떤 일을 기록한 경우는 그 부분만 또는 그 페이지만 찾아 삭제할 수 있지만 인간의 기억에는 그런 조작이 아예 불가능하다. SF 영화에 나오듯 사람 머리에 무슨 기계를 씌우고 특정 기억을 주입하거나 거꾸로 특정 기억을 삭제하는 것은 정말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최면이나 암시로 특정 사건을 망각하도록 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장면도 영화에 많이 나오지만 그건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상기되는 과정만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렇게 억눌린 기억이 엉뚱한 방향으로 돌출되면 주인공은 그 기억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에 놓이게 되고 이런 경우 가장 좋은 해결책은 역설적이게도 원래 기억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스토리 전개인데 이는 실제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과정과도 동일하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머리를 크게 다치거나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는 상황이 되기 전에는 우리가 살면서 부딪친 모든 사건들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우리 인격에 깊이 새겨진 채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 역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트라우마 치유라는 것 역시 그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서두의 안타까운 요청, 고통스러운 기억을 없애고 싶다는 요청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기억을 없애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지만, 당신의 기억이 조금 덜 고통스러운 것이 되도록 도울 수는 있다고.

말로 하던(상담치료), 약으로 하던(약물치료), 전자기계로 하던(바이오피드백, 경두개자극기) 결국 모든 트라우마 치료가 목표하는 것은 바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덜 고통스럽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이 그 기억을 끌어안고도 남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기억을 가지고도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하면서 어떤 경우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보다 오히려 더 풍성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그것은 하나의 사건과, 그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흔히들 믿는 것처럼 필연적 대응 관계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증언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그 기억에 대한 감정은 또 얼마나 천차만별이겠는가? 트라우마는 바로 그 기억이 감정으로 연결되는 단계에서 입는 내상(內傷)인 것이다.

즉 어떤 사건을 내 인격이 이것은 '상처'라고 규정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트라우마'를 입게 된다는 말이다. 언뜻 좀 난해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상투적 표현,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큰 깨우침을 얻었다는 그런 예화들에서 이미 우리가 많이 들어온 '만물일체 유심조(萬物一切 唯心造)'의 트라우마 버전일 뿐이다. 그래서 한 개인에게 있어서 어떤 사건을 왜 그렇게 기억했고 그 기억이 왜 그 사람에게 그리도 괴로운 것인지를 찬찬히 살피고 그 과정을 추적해 나가다 보면 그 기억이 그런 고통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적 경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겐 그 기억을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게 필자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 그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경우마다 다르고 사람마다는 더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자세히 살펴보면 그 고통의 스토리 속에 이미 회복과 치유의 단서도 같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상처를 만드는 마음이 치유도 같이 만드는 것이다.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구조와 과정에 콤플렉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콤플렉스라는 말과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로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주고 그 틀에서 치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연재글 제목이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인 것이 그런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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