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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

                                                     반칠환

나비는 날개가 젤루 무겁고

공룡은 다리가 젤루 무겁고

시인은 펜이 젤루 무겁고

건달은 빈 등이 젤루 무겁다

경이롭잖은가

저마다 가장 무거운 걸

젤루 잘 휘두르니

△반칠환시인 : 1964년 충북 청주.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중앙대 문창과 졸업. 2005 자랑스런 청남인상. 2002 서라벌문학상. 시집 '새해 첫 기적' '전쟁광 보호구역'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꽃술 지렛대' '뉘도 모를 한때' '책 세상을 훔치다' '웃음의 힘'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내 팔자는 왜 이럴까" 하고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손 놓고 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년퇴직을 한 남편이 이제는 여유롭게 시간을 즐겨도 되련만 자꾸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양봉을 한다며 말벌에 쏘여 응급실 행으로 고비를 넘기더니 된장공장을 하는 친구를 도와야 한다고 가서는 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단다. 자잘한 건수는 더 들어봐도 뻔하다. 이래저래 뒷모도는 모두 집사람 몫이 되니 팔자타령이 나온다.


노는 것도 팔자란 말이 있다. 잘 노는 것도 잘 사는 방법 중의 하나다. 에너지 축적의 원리를 알면 놀이에 대한 답이 수월할 텐데 말이다. 이 시를 읽노라니 무겁고 어려운 일을 뚝딱 해내는 것을 팔자라고 하는 게 아닌가. 젤루 무거운 것을 젤루 가볍게 잘 휘두르는 것이 타고난 팔자라는 것이다. 

 


사람을 집이라 치면 태어난 해, 월, 일, 시를 네 기둥이라 한다. 거기에 천간인 갑을병정...으로, 지지는 12띠를 표하는 자축인묘...를 나열한 글자. 하나의 기둥에 천간과 지지, 두 글자가 붙으니 네 기둥에서 8字가 생기는 원리를 일반적인 팔자라고 하는 것들이다. 四柱라는 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태어난) 뼈대이고 8字는 자신이 운용하여 새롭게 개척해가는 것이라고 보아 정해진 운명은 없다는 것인가. 매사가 고만고만한데 내게 젤루 무거운 것이 무엇인지 딱히 집히는 게 없다. 펜을 휘두르기엔 너무 쇠약하니 잡다한 것들의 무게가 더 크다고 할 수 밖에. 그러니 내 팔자는 아직도 모르겠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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