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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옆으로 오솔길이 있다. 자주 눈이 간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성큼성큼 들어설 것 만 같다. 이 외진 산골에 누가 오겠나 싶으면서도 틈만 나면 작은 문 쪽을 보게 된다. 밭을 경작하면서 생긴 일종의 습관이다.

주말이면 밭으로 온다. 휴식이 필요해서다. 더불어 유기농으로 키운 농작물로 식구들 밥상을 차리고 싶었다. 허나 생각해보면 욕심이 과했다 싶다. 일주일 만에 오면 언제 뽑았냐는 듯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다. 짬짬이 주말을 즐기겠다던 나의 군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질때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럼에도 나는 주말이 기다려진다. 일상에서 벗어나 밭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나는 이곳을 나의 농장이라 부른다. 그렇게 부르면 어쩐지 부농이 된 것 같다. 물론  마음만 풍족하다. 무늬만 반 농부다. 밭이래야 하늘이 주면 먹고 주지 않으면 먹지 못하니 농사를 짓고 있는 작은 밭은 천수답이다. 긴 장마나 가뭄이 오래 들면 뿌린 씨앗조차 거두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은 하늘이 무심하지 않아서 고맙다. 기대치만큼은 아니라도 더러는 지인들과 마음을 담아 나눌 수 있어서 무어보다 좋다.

작은 농장은 큰 도로를 벗어나서 옆으로 길을 터야 맞닿을 수 있다. 정면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샛길이다. 나는 그 좁고 한적함에 반해서 고민의 여지도 없이 땅을 덥석 사게 되었다. 이른 아침 밭을 오르는 좁은 길에는 참새들과 까치 심지어는 꿩까지 소란스러움으로 길을 쓸고 있다. 조심조심 발을 들이면 새들은 춤을 추듯 하늘로 날아오른다. 산길에서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듯이 왁자지껄하다. 좁은 흙길이라 불편함과 사연도 많지만 오솔길의 매력은 무궁하다.

유년을 났던 곳도 그랬다. 내가 살았던 작은 오두막도 좁은 산길을 옆으로 두고 있었다. 집을 경계로 산으로 가는 작고 예쁜 오솔길이 나 있었다. 집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산이나 논밭으로 가는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불쑥 들어와 목을 축이기도 하고 중참으로 이고 가던 음식들을 풀어놓기도 했다. 그처럼 수시로 인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좁은 산길을 옆에 두고 살았던 혜택이 아닌가 여긴다.
시골 벽촌의 살림살이는 대부분 팍팍했다. 그럼에도 온기를 나누었던 이웃들의 품이 넉넉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틈만 나면 대문도 없는 집 옆을 눈으로 지켰다. 스치는 바람 속에 사람 냄새가 섞여 올까봐 그랬을 게다.


그 집의 좋은 점은 오솔길을 갖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음지와 양지로 마을을 가르는 좁은 강과 남해의 은빛 바다를 한 눈에 담았다. 키가 작은 내겐 유난히 높았던 마루에 걸쳐 앉아 산의 사계절을 화폭처럼 마주보며 살았다. 심지어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우리 집보다 낮은 곳에 있었으니 아랫집들의 지붕을 보면서 그 지붕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불러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극히 드문 일이지만 아주 가끔은 어머니와 이른 저녁을 먹고 마루에 걸터앉아 앞산을 보고 있으면 숙모뻘 되는 이웃이 오솔길을 더듬어 불쑥 찾아들기도 한다. 둘보다 셋이 낫다. 둘이다가 셋이 되는 마음의 풍족함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시린 마음들이 따뜻해진다면 이해가 될까, 억지춘향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혼자 사는 노인들은 새벽마다 찾아들어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이슬을 적시며 아침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재바른 해가 산을 넘으며 박모에 깃드는 오솔길은 행상 갔던 어머니를 마중하는 길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돈을 사기 위해 지쳤을 당신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대롱대롱 매달리면 하루 종일 부재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집을 지척에 두고도 어머니는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디쯤에서부터 품고 왔는지 바람은 가끔 사람 사는 냄새도 풀어놓고 갔다. 어린 날의 집 옆으로 났던 좁은 오솔길에서도 마주하던 기억이다. 스냅처럼 선명하게 저장되어있다. 스냅은 수없이 많아졌다가도 때로는 한 장으로 응축되기도 한다.

지나가는 하얀 구름도 산봉우리를 거치고 간다. 평온한 일상이다. 멀리 도로에는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올만한 사람도 없는 호젓한 산길로 자꾸만 눈이 간다. 좁지만 한적함과 과하지 않은 그리움이 좋다. 지금처럼 오래도록 좁은 산길을 끼고 살았으면 좋겠다. 잠깐 머물던 구름도 해를 달고 떠난다. 산길이 어둑해지기 전에 하루를 걷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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