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편한 휴식

                                                   마경덕

실직을 당한 가장家長처럼,
그는 무료하다

차일피일 여름의 끝을 미루다가  
방구석에 서서
빈둥빈둥 눈칫밥을 먹는 중이다

발목이 서늘한 풀벌레 소리가 창을 넘어오도록 
계절의 끝마디를 묶지 못해
어정쩡한 그에게 

폭염이 밥이었다
몰려오는 열대야에 야근도 서슴치 않았다
그 많던 일거리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두 달이 넘도록 일을 굶은 선풍기는
맥이 탁 풀렸다

일거리가 없어 사장의 눈치를 보다가
떨려난 앞집 사내도
길에서 마주친 표정이
저렇게 머쓱했다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신발論'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그녀의 외로움은 B형' 현재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AK아카데미, 강남문화원 시 창작 강사. 제2회 북한강 문학상 대상 수상.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피서와 휴가 시즌이 거의 끝났다. 예외 있는 올 여름의 휴가는 그 형태가 다양했다. 휴가기간이 배로 늘기도 하고 회사 내부 사정에 따라 간헐적인 출근을 해야 할 만큼 복잡한 양상을 띠기도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얼씨구나 반가워해야 할 휴가는 각자 입장에 따라 불편하고 불안한 휴식이 되어버렸다. 일거리가 없어서, 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획일적인 휴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재충전의 기회가 아닌 불확실의 불안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의 뉘앙스가 폭염이 밥이 된다는 것 아닌가. 악조건을 견디며 고군분투하던 사람들. 설 자리가 없어진 사람들이 밀려나는 구석에는 폭염대신 그늘이 던져진다. 톱니바퀴에 물려 돌아가던 일상이 깨어지면 부품으로서의 역할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부품이란 서로 맞물려 있어 개인은 무시되는, 익명으로서만 존재한다. 손가락이 끊어져도, 목숨이 위태로워도, 교체가 이루어질 뿐 멈춰 서는 일은 없다. 폭염 속에 선풍기가 그렇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먼지를 뒤집어쓰고 희미한 존재로 밀려난다. 서슬 퍼런 계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노동자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선풍기. 누군가 말한다. 옆집의 실직은 불황이고 나의 실직은 대공황이라고. 선풍기를 통한 명징한 은유는 남이 가르쳐 주는 게 아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대공황 속에서 부품들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은 말했다. '살아남는 자는 가장 강한자도, 가장 현명한 자도 아닌 변화하는 자'라고 했다. 가장 빛나는 별을 보기 위해선 가장 깊은 어둠속으로 걸어가야 하듯이 이 불편한 휴식 앞에서 어떤 변화를 찾아야 하는지 숙제가 던져졌다. 고령자 대신 젊은 피 수혈만이 살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문학이 예방주사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정옥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