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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그 안과 밖

                               성희경

가두며 사는 것과
갇히며 사는 것은
종이 한 장보다 극미한 차이다
바다는 하늘을 가두고
하늘은 바다에 갇혀
가끔 구름이 바다를 음해하기도 한다

소용돌이치며 바람을 갖고 놀았던 날들
방파제엔 부서지고 구겨졌던 흔적들이
속속들이 새겨져 있다

들물 날물로 풀어헤친 심장들
언제나 물살이었다
너울을 적시는 토혈
갯바위를 끌어안는 뱃고동
그러나
줄행랑친 시간들은 방파제 안을 기웃거렸다

앙가슴 이쪽 저쪽에서
세상은 등댓불을 켜고
혼란스러웠던 나의 한때도
이젠 바람 잔 포구에 정박한다

나들목은 언제나 순간의 선택이었다

△성희경 시인: '문학세계' 시 등단. 울산산업문화축제 시 부문 2012~2016 수상. 울산태화강 낭송가협회 회장역임. 울산문인협회, 울산남구문학회 회원. 詩나브로 시문학 동인.
 

이미희 시인
이미희 시인

여름이 떠나가는 바다엔 휑한 발자국만 떠다닌다. 젖은 바람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간 사연들을 데려온다. 방파제로 와 부딪힌 삶의 물난리도 한 계절 보내는 사이 물빛으로 녹아내린다. 9월이 오는 바다를 보며 시 '방파제, 그 안과 밖'을 읽어본다. 가두고 사는 것과 갇히며 사는 것에 고민하던 생각이 좀체 빠져나오질 못한다. 이 시의 매력은 첫 줄에서 던지는 철학적인 요소가 뒷줄을 빨리 읽고 싶게 만든다. 단어 몇 마디로 시의 들머리를 단단하게 만든 시인의 방파제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어쩌면 우리는 갇히며 사는 것이 가두고 사는 것보단 훨씬 편안하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서로 가두며 사는 게 아닐까. 또 다른 삶들이 음해할 때까지 서로를 가두며 사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부서지고 구겨졌던 흔적들이 속속들이 새겨진 방파제에서 소용돌이치며 살았던 지난날이 읽힌다. 겁 없는 한때의 젊은 물살이다. '너울을 적시는 토혈' '갯바위를 끌어안는 뱃고동' '줄행랑친 시간'들에서 시인만의 독특하고 짙은 서정성이 마음을 잡아챈다.

삶의 파란은 너울을 견디는 일과 같을 것이다.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낸 세상이 등댓불을 켤 때까지 방파제를 들락거린 시간은 얼마나 앙가슴을 태웠을까. 바람을 갖고 놀았던 날들과 들물 날물로 풀어헤친 심장들이 바람 잔 포구에 정박한다. 이제 그도 세상이라는 포구에 잔잔히 안길 수 있겠지. 방파제를 덮쳐버릴 것 같은 파고도 부드럽게 다스릴 수 있겠지. '나들목은 언제나 순간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아프고도 아름다운 물살이었다. 이미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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