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 세월 이어진 화석연료 시대에 황금기를 구가해왔던 정유사들이 수소 자동차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친환경 업체로의 '역설적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적자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유사가 전통적으로 주력해 온 석유 사업을 뒤로하고, 경쟁 상대로 여겨왔던 수소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채비에 나선 것이다. 

#SK에너지 등 이미 타당성 조사 마쳐
1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 에쓰오일을 포함한 국내 정유 4사가 현대자동차와 함께 수소상용차 충전 인프라 관련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올해 연초 산업통상자원부의 제안으로 논의를 시작해 각사별로 타당성을 조사해왔으며 이르면 연내 업무협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SPC 설립 시점은 내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주요 사업 내용은 수소 트럭, 수소버스 등 상용차 충전 인프라 구축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는 정제과정에서 수소 생산이 가능하고 기존에 다루던 제품과 유사한 성질의 수소를 유통하는 것이어서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전했다.
 
정유사의 이같은 행보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가속화와 정부의 '그린 뉴딜'에 발맞춰 신사업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그린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수소충전소를 지속 확대해 오는 2025년까지 총 450개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수소 충전 사업을 구체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올 11월 가동을 목표로 평택시에 수소충전소를 구축하고 있으며, 지난 7월 '수소물류얼라이언스' 참여도 공식화했다.
 
에쓰오일의 경우 서울시와 협의해 마곡 연구소 부지에 수소 충전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수소경제 생태계 조성에 대응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더 이상 석유 사업의 사업성을 기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정제마진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면서 하반기를 기대했던 정유 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실제 이달 첫째 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0.8달러를 기록했다.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지난달 첫째 주(-0.3달러) 이후 한 달 만이다. 정제마진은 지난달 둘째 주 0.2달러로 플러스로 전환됐지만 이후에도 0달러대에 그쳐 정유 업체들의 시름이 깊었는데 이마저도 마이너스로 전환된 셈이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용 등의 비용을 뺀 금액이다. 
 
정유사들은 하반기 석유 수요가 살아날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정유사들이 제품을 만들어 팔수록 손해라는 의미다.  
 
업계는 정제마진이 통상 배럴당 4∼5달러는 돼야 수익이 난다고 보기 때문에 정유사들의 수익성 우려가 큰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수요 위축 가능성을 감안하면, 유가와 정제마진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관측했다.  
 

#일부 수익성 장담 못해 시기상조 지적
다만 만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정유사의 환경을 놓고 볼 때 수익성 면에서 아직 수소 산업에 뛰어들기에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소 충전소를 건설하는 데는 통상 30억원 가까이 소요되고 부지를 제외하고 설비만 들여오는 것도 평균 20억원이 든다.
 
게다가 수소차가 얼마나 늘어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소 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려면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국내 정유 4사는 이미 상반기에만 5조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하반기 석유수요도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달 월간보고서를 통해 올해 국제 석유수요 전망치를 하루 평균 9,063만 배럴로 잡았다. 
 
지난달 월간보고서에서 내놓은 전망치보다 하루 9만 배럴 적은 수준이다. 
 
분기별로 보면 올해 3분기와 4분기 석유수요 전망치는 각각 하루 9,210만 배럴, 9,583만 배럴로 지난달 보고서보다 하루 12만 배럴과 39만 배럴 줄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모빌리티 연료가 기름에서 전기, 수소로 확대되고 있다"며 “글로벌 트렌드와 정부 정책에 따라 미래 시장 우위를 점하려면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주화기자 jhh0406@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